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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구미 재정립🧚🏻♀️ 2025년의 반이 지나간지 꽤 됐지만 반을 지난 기념으로 오랜만에 내 추구미를 재정립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요즘 내가 일상생활에서 나를 위해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더 나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정리. 1. 가볍기 여전히 삶을 가볍게 생각하자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일상에 많은 부분을 애지중지하며 완벽을 추구하면 고통스러운 건 나 자신이다. 놓아줄 수 있는 건 과감히 놓아주자. 2. 직시하기 이거는 요즘 새롭게 추구하는 내 방향성이다. 내 감정을 직시하는 것.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하고 물론 평범하고 평범한 사람 중에 더 평범한 사람인 나는 내 감정을 직시하고 인지하는 것이 어렵다. 감정에 대한 확신이 적기 때문이다. ‘이 순간 내가 이 감정을 가져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을 여전히 나는 많은 순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미 든 감정에 대해 의문을 가져서 무엇하겠나. 그저 감정을 직시하며 부정적인 감정이라면 빠르게 휘발시키고 긍정적인 감정이라면 한껏 누리며 행복을 느끼자. 3. 무해하기 이건 여전히 나의 추구미. 대인관계에서 무해하고 싶다. 세상은 교과서에서 배웠던 것처럼 아름답지 않고, 우리가 생각한 어른들은 어른답지 못하다. 무해하지 않기가 어려운 세상, 적어도 나라도 타인에게 그리고 나에게 무해하자. 나에게 무해하려면 앞의 두가지는 지켜야지. -

안 쓰던 근육을 쓰면 근육통이 온다.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아, 내가 이 부분을 그동안 안 썼구나’, ‘운동이 부족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살아있다는 게 온전히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안 느끼던 감정을 느끼면 감정통이 올까? 최근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오랜만에 ‘수치’를 느껴보자는 이야기를 했다. 안 쓰던 근육을 일부러 써주며 골고루 몸을 움직여야 하듯, 오래 느끼지 못했던 ‘수치’ 같은 감정도 한 번쯤 느껴봐야한다고. 감정도 안 느끼다 보면 굳어버리지 않을까. 다채로운 삶을 살려면 애써 다양한 감정을 마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슬픔, 아픔 같은 감정도 피하려다 보면, 오랜만에 마주했을 때 감정통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견디기 힘들지 않을까. 또, 어떤 감정을 너무 자주 느끼다 보면 그 감정에 익숙해져 역치가 높아지는 건 아닐까. 반대 감정도, 다른 감정들도 골고루 느껴줘야, 결국 행복 같은 감정도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 요런저런 생각. 🧘🏻♀️

최근 재정난과 더불어 책 선정난까지 겹치면서, 나는 나에게 독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재정난과 관련해서는, 책꽂이에 넘치게 책이 꽂혀있는데 왜 이미 읽은 책을 다시 읽으려 하지 않는가. 책 선정난과 관련해서는, 왜 어려운 책을 피하려 하는가. 결국 나는 독서를 통해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우선, 한 권 한 권 완독할 때마다 성인이 된 후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든 성취감을 얻고 있다. 회사를 쉬는 동안 무력함을 느꼈고 성취를 하면서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되니 내가 성취지향적 인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속한 집단에서 책 읽기는 여전히 지적인 행위다. 그 속에서 한 권을 끝까지 읽고, 그 개수를 세어 기록하는 일은 손쉽게 지적인 성취를 확인하는 방법이 된다. 또, 나는 종종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그럴 때 책을 내 실력껏 마음에 들게 사진으로 담고, 그 아래에 내 생각을 적어 하나의 ‘작품’처럼 만든다. 그렇게 쌓인 게시물들은 나만의 갤러리가 되고, 나는 잠시 예술가가 된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독서는 나의 도피처다. 스트레스가 치솟는 순간, 나는 신경안정제를 찾듯 책을 찾는다. 처음엔 글자와 단어를 기계적으로 따라가지만, 어느 순간 서사의 안으로 들어가면 마음이 진정된다. 또한, 현실이 아닌 글 속 세상에서 한숨 돌린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가 이래서 되는 걸까? 살면서 많은 것들에 이유를 대지 못했는데 책을 읽는 것에 대한 이유는 이리 선명하게 정리할 수 있다니. 이유야 어떻든 내가 책을 정말 좋아한다는 건 알겠다.

프루스트에게 예술은 도덕적 임무를 띠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진리를 발견하고 개인의 삶을 영원으로 승화할 수 있는 해법이다. 나도 예술할래. 글. 나를 찾기 위한 글. 나를 나타내는 글. 내가 사랑하는 글. 그리고 글이 담긴 책. 책읽기. 프루스트에게 러스킨. 러스킨에게 렘브란트. 나에게 프루스트. 프루스트는 향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담아놓은 나를 찾는 향수. - 아맞다, 내가 예에에에에엣날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안 읽고 이 책을 읽었을때 무슨 개똥같은 리뷰를 썼던 기억이 난다. 궁금하면 찾아보시오🫶🏻 #마르셀프루스트

폐허는 우연이 만들어 낸 미학적 결과물이다. 그것을 일부러 아름답게 만들 수는 없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폐허를 만들지 않으며, 관리하지도 않는다. 폐허는 밑으로, 그리고 무더기에 가까워진다. 가장 멋진 것은 무너진 이후에도 여전히 서있는 것들이다. _p.18 오직 살아있는 자들만 일관성이 없는 듯하다. 죽음은 그들의 삶을 구성했던 일련의 사건들을 종결시킨다. _p.20 죽음은 정말 멈추는 것일까? 그렇다면 인간은 타인의 인지로만 사는 동물이 아닌가? 타인에게 잊혀진다면 죽는 우리는 기억생명체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유일하게 거북했던 장면은 ’너‘의 죽음으로 슬픔을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였다. ’너‘의 죽음이 ’너‘라는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에 있었다면 그들의 슬픔은 그것을 망가트리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너‘는 본인의 작품에 타인의 슬픔이 들어갈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작품을 감상하는 나로서는 이것은 온전하게 ’너‘의 작품을 느낄 수 없게 하는 방해물이 되었다. 그만큼 한 개인의 죽음이 온전하게 ‘죽음’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 될 수 없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고싶은 생각은 없다. 그리고 누군가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도 없다. 단지 죽음을 도덕적인 틀에서 벗어나서 그저 하나의 방식으로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를 온전히 느껴보고 싶을 뿐이다. 어쩌다 세 번을 읽었다. 번역가님 덕분에 읽을 수 있었고 그럼에도 원어로 날 것의 문장을 읽어보고 싶은 욕구가 차 올랐다.

한낮의 우울, 앤드루 솔로몬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지나온 어두웠던 길을 한걸음 한걸음 돌이켜보는 기회가 되었다. 한 사건으로 시작해 어두운 길에 갇혔던 지난 2년 간을 나는 소중한 기회이자 운이 좋았다고도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내가 살면서 아마도 바닥일 가장 깊은 곳까지 닿아보았다. (더 깊은 곳이 있더라도 이제는 내가 얼마나 자신있게 헤엄쳐 나올 수 있을 지 알기에 두렵지 않다.) 바닥에 닿고 보니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를 위해 선택하지 못한 결정들이 쌓여 그렇게 바닥까지 닿았기 때문에. 그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려고 나는 나를 알기 위해 노력했다. 삶의 이유를 찾으려 애썼다.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애썼다. 그 노력에는 책이 함께 했다. 알베르 카뮈, 밀란 쿤데라 등등 많은 책들을 읽어가며 나 혼자만 삶과 존재 이유에 대해 고뇌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 작가들 덕분에 쉽게 길을 찾고 깨달을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에게 이방인이 되지 않는 것. 나와 내 속의 나라는 존재와 일치되는 것. 내 속의 나를 보며 원망할 것이 아니라 내 속의 나와 같은 방향을 보게 되는 것. 그리고 우리 존재에는 딱히 이유가 없다는 것. 그저 일상에서 마주하는 순간들에 행복을 느끼고 선택의 기로에서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한번 더 살펴봐주는 것. 나를 위해서. 그런 것들을 깨달은 나는 우울, 불안, 공포 속에 잠기기 전의 나보다 그것들을 이겨내보려고 노력한 뒤의 나 자신이 훨씬 좋다. 그 어두운 길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닌, 머물러있는 나였을테니까. 이 책을 덮기 직전 나온 글들은 우울에서 이겨낸 사람들이 자신들의 우울을 어떻게 사랑하게 됐는지 나온다. 나는 온몸으로 전율을 느꼈다. 결코 내가 틀린게 아니었음을, 그 고통이 내게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자양분이 되어주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주었다. 언제든지 다시 어둠에 잠식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물론 약도 여전히 먹고 있다. 언제든 다시 우울할 수 있고, 겁날 수 있고, 불안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나는 다시 밝은 곳으로 빠져나올 자신이 있고 힘이 생겼다고 느낀다. 대견하다. 나 자신.

먼 산의 기억, 오르한 파묵 “ 결국 우리는 자기 자신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구석진 곳에 사는 것•••. 그러면 인생의 다른 사소한 부분들이 얼마나 신비로운 것으로 가득한지 알게 된다. ” - 삶도 이렇게 남의 공책을 구경하듯 그저 관망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아침부터 지인의 결혼식을 다녀왔다. 그리고 아기와 젊은 부부가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앉아있는 자리 근처에 앉아 대화를 하고 있다. 오늘 결혼한 내 지인과 저 누군지 모를 가족은 어떻게 한 발짝 내딛어 저리 되었을까. 나에게는 결혼과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이 한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그 결정에 큰 어려움은 없었을까? 두려움은? 기대감만 있었을까? 확신에 가득찼었고 그 확신이 여전할까? 아니면 그 기대와 확신을 잊게 되었을까? 오르한 파묵의 공책을 담은 이 책을 읽다보니 삶을 이 책 보듯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 없음에 괜히 책과의 거리감이 생겼다. 조금 무섭기도. 사람들은 어떤 심정과 얼마만큼의 대단한 용기로 삶을 살아내고 있을까. 나는 왜 어떠한 변화와 선택이 마치 미사일발사 버튼을 누르듯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할까? 미사일 발사보다 더 중대한 일일수도 있지. 쓰다보니 이런 감상도 재밌다. 책을 읽는 그 바깥의 내가 느낀 것들. 비도 오고, 찹찹하고. 착찹하네. 리뷰를 마무리하려던 순간 부부가 싸우고 아기가 그 분위기를 느꼈는지 울기 시작했다. #오르한파묵 #먼산의기억 #민음사

한낮의 우울 / 3번째 조각리뷰 #책추천 #한낮의우울 #민음사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장영희 어쩜 책을 읽는 순간조차도 다이나믹한지, 오늘 갑자기 사람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작은 패닉이 왔다. 나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 책상 위에 있던 이 책을 펼쳤고 안정을 찾았다. 그래, 이런 글. 거창한 사상을 담거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담긴 글이 아니더라도 그저 사람들에게 안정감이나 숨쉴 틈을 주는 편안한 글을 쓰고 싶다. 편안해졌다. 작가님의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이 꽃비 같았다. #샘터 #이아침축복처럼꽃비가 #장영희 #산문집

한니발 라이징, 토머스 해리스 한니발.. 범죄자에게 변명거리가 될 서사가 있는걸 그닥 좋아하지 않지만 한니발을 읽으면서는 뭐랄까 그런게 흔들리는 것 같아서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한니발이 변명거리가 통할 범죄자였다면 유명해질 리 없었겠지. 역시나 한발짝 더 나아가는 모습에 ‘그래, 이건 변명거리도 통하지 않을 범죄야. 그래, 그럼 그렇지.’하고는 정신없이 읽어나갔다. <카리모라>가 실망스러워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역시나 재밌었다. 그래도 <양들의 침묵>은 넘사벽. #한니발 #양들의침묵 #범죄소설 #토머스해리스

나에겐 너무 무서운 이야기 며칠 전, ‘어떤 활동’을 하면 봉사시간을 7시간을 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부가적으로 7시간을 챙겨준다는 얘기였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학생도 아닌데 봉사시간이 어디 필요하지?’하는 생각을 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어떤 활동’이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더워서 기억을 잃고 있는 걸까 하며 계속 돌이켜 생각해 보고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꿈인 듯싶었다. 또 며칠 전에는 사회에서 만난 ‘어떤 분’이 나에게 ‘자기는 후배들과 어색한 게 싫다’고 했다. 그러면서 운전해서 장거리 출장을 가면 후배가 보조석에 앉아 불편해할 것 같아서 엉뜨(자동차 좌석 엉덩이 열선)를 틀어준다고 했다. 이 더운 날에. 그러면 하하 호호 웃으면서 불편한 분위기가 없어진다는 얘길 해줬다. 자기는 그렇게까지 노력하며 격의 없는 관계가 되려고 한다는 얘기였다. 그걸 들으며 나는 ‘아, 어색한 걸 극도로 꺼리는 분이구나.’하고 생각을 한 기억이 있는데 ‘어떤 분’이 누군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것 역시 꿈이었던 것이다. 요즘 꿈을 꾸면 정말 특별할 것 없는 너무나 일상적인 일들이 나온다. 그래서 낮에 활동을 하다가 어떤 기억이 떠오르면 그게 현실로 느껴져서 ‘내가 그걸 어디서 들었더라? 봤더라?’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렇게 생각을 좇다 보면 꿈이었구나 싶어진다. 가끔은 이런 기억을 현실로 생각하고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하곤 하는데 그럼 결말에 가서는 어색해진다. 그 얘기를 한 사람이 누군지 기억나지 않고 근본이 없는 얘기기 때문이다. 그럼 약간 무섭다. 이러다가 꿈에 잡아먹히는 게 아닐까 하고. 아니면 지금 이 글을 쓰는 내가 꿈속에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이제는 귀신보다도 이런 게 무섭다. 뭐가 진짜 현실인지는 알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냥 믿으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 30년 쯤 살다보니 삶이 특별한 게 없다는 걸 깨닫고 꿈마저 일상같이 되어버린걸까

📍기장 베이커리 카페 #협찬 #리뷰노트 빵지순례의 성지 기장, 그 중심에 자리한 감성 로스터리 베이커리 카페를 소개할게요. 핑모네이드부터 쌀라떼, 모히또 음료까지 시그니처 드링크는 물론, 홍국쌀식빵, 두바이초콜릿, 쌀케이크류 등 진짜 진심으로 만든 디저트가 가득했어요. 이 공간은 단순히 카페가 아니라 정성이 가득 담긴 기장 감성 맛집이에요. 맛은 기본, 분위기는 덤. 카페 창밖으로 펼쳐진 기장의 여유를 한입에, 한 모금에 담아보세요. #기장카페 #기장베이커리카페 #빵지순례#기장대형카페#부산빵지순례 #기장맛집#기장가볼만한곳#동부산관광단지#오시리아#부산롯데월드#쌀라떼#쌀식빵#기장빵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