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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다른 모든 예술과 마찬가지로, 삶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고백이다. _페르난두 페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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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슬프면 손바닥이 아프다. 오늘 손바닥이 여러 번 아팠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가 전과 달라지신 모습을 보며 몇 해 전부터 늙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거부한다고 해서 도망칠 수 있는 것도 아닌 늙어감인데,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유난히 가혹하게 느껴진다. 그냥 너무 슬프다. 정정하셨던 할아버지가 같은 질문을 반복하시고, 의자에 앉으시려다 중심을 잃고, 그 순간 스스로 부끄러워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고통스러웠다. 단순히 몸이 약해졌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정신은 여전히 또렷한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상태. 자신의 노화에 따른 실수들에 죄스러움을 온전히 느끼는 늙어버린 사람. 늙음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사랑하는 대상이 변해가는 걸 보고 있으면 너무 끔찍하고 두려워진다. 그 대상이 전과 다르다는 걸 깨닫고 함께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사실과 나 역시 그 순간에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에.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무너지는 상태, 혹은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고 나 자신을 잃는 것. 두 가지 결말 밖에 보이지 않는 순간이다. 나는 존엄을 잃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 보호의 대상이 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방식으로 늙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최근 더 강해졌다. 죽음 앞에서만큼은 최후의 선택을 안락사라는 내 의지에 따른 선택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아빠가 할머니에게 더 잘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마음이 무너졌다. 노력의 정도와 상관없이 후회는 항상 찾아오는 듯하고, 우리는 언제나 조금 부족한 채로 이별을 맞는다는 사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내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살기에는 눈 앞에 보이는 현실이 너무 크다. 연휴가 끝나고 출근하면 이 생각들이 옅어질 것이다. 업무와 일상 속에서 할아버지의 모습은 잠시 뒤로 밀려날 것이다. 그런데 그것마저 서글프다. 그런 생각이 사라지는 것도 늙은 존재가 초라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늙음과 상실. 노력과 후회. 무력감. 어디에서 이렇게 고통을 느끼는 걸까.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과 지켜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곁에 있어야 한다는, 후회가 따라올 배웅을 한다는 것.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닐까. 이런 부조리를 마주하면 나는 신을 찾게 되고, 원죄를 떠올리게 된다. 내가 겪어야 할 고통이 합당하지 않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고통에 누군가의 잘못이라도 있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설계자의 의도라도 있다면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늙음은 잘못도 아니고 벌도 아니다. 그래서 더 잔인하다.
#연휴의독서록 낮에 신나서 카페가서는 <서왕모의 강림>을 왕창 읽었다. 라슬로의 단편집인데 워낙 한 문장이 길어서 한 편에 몇 문장이 안된다. 그러다보니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눈물을 마시는 새>는 1편 읽고 시간이 꽤 흘러서 까먹었을까봐 걱정했는데 재밌게 읽었던터라 다행히 기억은 잘 나서 쳐지는 저녁 타임에 재밌게 읽기 좋았다. 아 벌써 출근하기 싫다. #눈물을마시는새 #크러스너호르커이라슬로 #서왕모의강림
이제서야 <어쩔 수가 없다>를 봤다. 분명 소리내서 웃은 장면도 있었는데, 그 포인트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 보고 난 지금 내게 남은 건 두통과 묘한 공포뿐이다. 영화 속 인물은 악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가족을 지켜야 했고, 살아남아야 했다. 선택지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그는 점점 더 밀려났다. 그리고 생존을 선택했다. 그 선택이 세 사람의 죽음으로 이어졌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을 합리화한다. 세 번째 사람을 죽이기 직전 여기서 멈추면 앞서 죽은 두 사람의 죽음이 무의미해진다고 말한다. 그 장면이 오래 남는다. 이미 저질러진 일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없다는 생각. 가장의 책임감, 재취업이라는 것으로 살인까지 정당화하려는 태도. 그에게 가치는 돈이었고, 생산성이었고, 사회에서 버림받지 않는 것이었다. 시체를 처리하는 일이, 사회에서 가정에서 아무런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태로 떨어지는 것보다 쉬웠던 것이다. 이 영화는 악인을 보여주기보다 조건에 몰린 인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조건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더 무섭다. 자동화되어가는 시대, 인간의 자리는 점점 줄어드는 것 같고, 사회는 점점 더 각박해진다. 전에 읽었던 <우리는 왜 가짜 정의에 열광하는가>가 또 떠올랐다. 공동체가 삶의 한 기둥이 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타인은 오로지 경쟁자처럼 느껴진다. 나를 지옥으로 밀어 넣을 수도 있는 사람. 최근 유퀴즈에서 스토킹 관련 이야기를 하며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10억을 주는 대신 어떤 범죄를 저지르고 3년을 감옥에서 살아야 한다면 하겠느냐는 질문. (대충 그랬던 것 같은데 틀리면.. 말고..) 절반이 넘는 청소년들이 하겠다고 답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솔직히 충격이었다. 윤리의식이 무너졌다기보다, 그만큼 삶이 팍팍해졌고 청소년들 부터 그걸 느끼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이 영화가 끔찍했던 이유는 폭력 때문만은 아니다. 가치가 돈으로 환원되는 구조, 생산성을 잃으면 존재가 불안해지는 사회, 그리고 그 안에서 점점 합리적으로 잔혹해질 수 있는 인간. #그게 현실과 닮아 있어서 불편했다. 마지막 살인 앞에서 나는 그가 멈출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악인으로 비난하기보다, 저 상황에 서면 나도 완전히 자유롭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더 무서웠다. 나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내가 책임져야 하는 가족을 만드는게 맞는 선택일까 하는 생각까지. 우리는 어디까지 밀릴 수 있을까. 생존은 어디까지를 허용할까. 대단한 공포영화였다. #어쩔수가없다
많은 사상가들의 생각과 글이 제발트의 시선으로 다시 읽힌다. 낯선 이름들이 많아서 그의 시선을 따라갈 수 밖에 없기도 한데 그 점이 이 책의 난이도를 좀 더 높이는 것도 같다. 독일 전후문학을 이야기하면서 전쟁의 폭력성과 트라우마, 기억의 고통을 다루는 그의 문제의식은 선명하다. 그것에 감정이 담겨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어느새 읽는 나에겐 무언가 남는다. 그게 아마 제발트의 멜랑콜리인가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른 사상가들의 글을 향해 확신을 가지고 비평하고 판단하는 그의 태도다. 나는 아직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기가 어려운데, 그의 문장은 망설임이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판단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하며 다시 한번 나의 부족함을 느꼈다. 그나저나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는 조만간 읽어야겠다. 캄포 산토(Campo Santo) : 성역, 교회 묘지 / 살아 있는 사람들이 죽은 것들과 함께 걷는 공간 #나도내가뭐라는지모르겠다 #제발트 #캄포산토
#오늘의외근북 오늘은 외근을 나왔어여..(안물안궁?)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정신을 빼놓을 수 있는 소설 #타인의구두 와 차분한 에세이, #캄포산토 #책추천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쓴 책. 안 좋아할래야 안 좋아할 수가 없다. 이 책을 읽기 위해 <러브크래프트 걸작선>을 읽었고, 이 책을 읽고 다시 <러브크래프트 걸작선>을 읽고 싶어졌다. 이 책도 참 재밌다.. 스티븐 킹의 서문까지 참 좋다.. 이 책을 읽기까지의 경로를 추천드린다면 다음과 같다. 1. 미셸 우엘벡의 <지도와 영토>를 읽는다. 2. 감탄하며 <소립자>를 읽는다. 3. 미셸 우엘벡 책을 다 읽어버리고 싶다는 욕심을 낸다. 4. 미셸 우엘벡 책을 담다가 <H.P. LOVECRAFT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를 구매하고 러브크래프트가 누구야 하며 걸작선을 읽는다. 5. 위어드 픽션의 특이한 경험을 하고 이 책을 펼친다. #러브크래프트 #세상에맞서삶에맞서 #미셸우엘벡
미셸 우엘벡에 한참 꽂혀있던 때에 미셸 우엘벡의 책을 다 읽어버리겠다는 생각에 사모으다 <H.P. LOVECRAFT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 라는 책까지 구매했다. 반항심 가득한 나는 우엘벡의 반항심 가득한 에세이 뭐 그런건 줄 알고 덥석 사버렸는데 러브크래프트라는 작가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책이었다. 그래서 미셸 우엘벡의 책을 읽기 위해 러브크래프트의 책을 읽게 되었다. 이렇게 이 책을 읽은 동기를 주절주절 이야기를 하는 건 책이 읽을 책을 불러오는 그 감동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아무튼 공상과학 소설, 공포소설을 모두 담고있는 위어드 픽션(Weird Fiction)이다. 첫 시도는 너무 낯설어서 포기했다가 두번째 시도만에 성공! 여태 읽어본 공포소설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느낌.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그 무력감이 얹어져 공포감이 더해졌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은 공포를 해소해주지 않는다. 세계는 끝내 무심하고 인간은 미미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지점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내가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이, 내가 모든 의미를 떠안고 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묘한 해방으로 다가왔다. #러브크래프트 #공포소설
#오늘의출근북 오늘은 책 세 권을 들고 나왔어요🤲🏻 메인 책으로 읽고 있는 #캄포산토 그리고 자기 전에 읽던 #러브크래프트걸작선 , 그리고 미셸우엘벡이 러브크래프트에 대해 쓴 책까쥐~ #책추천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 토니 페르난도 | 강정선 옮김 어쩌면 이 내용은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자주 까먹고, 또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이런 책을 가끔 읽으면 좋다. 이미 알고 있던 말들임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지시를 글로 읽는 순간 적어도 며칠은 어제보다 나은 하루를 살아보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거창한 깨달음을 주어서가 아니라, 알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실청해야 하는지 아주 단순한 방향을 다시 짚어준다. 화를 다루는 법, 말 한마디를 고르는 태도, 쓸데없는 비교에서 한 발 물러나는 연습 같은 것들.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무엇보다 나 자신을 먼저 챙겨야만 이런 태도들이 실제 삶에서 가능해진다는 점이었다. 몸이 지쳐 있고 잠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마음챙김도, 연민도, 베풂도 모두 어렵다. 정신적인 수양보다 먼저 필요한 건 의외로 아주 기본적인 생활의 정돈일지도 모른다. 잘 자고, 무리하지 않고, 하루를 너무 흐트러뜨리지 않는 것. 정돈된 하루하루를 살자. #부처님말씀대로살아보니 #윌마 #토니페르난도
#오늘의출근북 마음다스리기용 책은 직장인 필수템..🪷 캄포 산토는 W.G. 제발트의 산문+에세이에요. <토성의 고리>로 제발트의 맛을 알아버려서.. 이 책은 지적인 섹시함이 그득그득합니다⚡️🩵 #책추천
다른 사람들의 리뷰가 정말 너무 궁금하지만 내 리뷰를 먼저 쓰고 읽어봐야겠다. 이 책을 읽으며 내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다. 먼저, 이 책을 01년에 태어난 작가가 썼다는 것을 왜 계속 상기하며 읽었을까. 책을 읽다가 훅 빠져드는 부분에서 순간적으로 ‘에? 이걸 01년생이 썼다고?’하며 충격을 받았다. 수많은 인용에서 느껴지는 어쩔 수 없는 대단한 독서력이 적어도 70년대에 태어나야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했다. 한편으로는 01년생이 적었다는데 허점을 찾으려고 한 것도 같다. 이 무슨 못난 심보인가. 둘째, 책을 그렇게 사랑하면서도 괴테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내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만약 이 책이 내가 좋아하는 밀란 쿤데라나 페르난두 페소아 등의 작가를 주제로 쓰였다면 과민성대장증후군으로 화장실에서 읽어야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읽었던 ‘파우스트’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으니.. 하지만 그런 어려움에도 이 책은 나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도대체 얼마나 한 작가를 사랑하면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싶은. 아마도 이런 놀라움은 작가의 나이에서 온 놀라움이 큰 것 같은데. 대단한 건 사실이다. - 명언은 언제부터 이렇게 가벼워졌을까. 우리는 늘 말의 출처부터 확인한다. 누가 했는지, 어디서 나왔는지, 원문은 무엇인지. 그 과정은 중요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된다. 출처가 분명하다고 해서 그 말이 지금도 살아 있는가. 반대로, 출처가 불분명하다고 해서 그 말은 의미를 잃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