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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은 결국 보는 만큼. 본인이 수용할 수 있는 만큼이다. 그러니까, 내가 보는 세상과 갑부가 보는 세상은 심히 다를 수밖에 없다. 전부 다르다. 아이와 어른의 세상이 다르고, 너와 내 세상은 또 다른 모습이다. 어쩌면 세상은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 하나마다 저마다의 세상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하기에 우리네 세상은 충돌이 잦고, 질기고 비린 소음이 끊이질 않는 듯하다. _시선과 버릇中 #인간관계 #일상 #글 #책 #에세이

진정으로 다정한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그럼에도 곁에 남아있으려는 마음이었다. 얼마만치 각별했었고 어떤 이유가 있었던 간에, 지금 여기에 남아있지 않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때 여기에 머물렀던 존재에게서 나올 거라곤, 기껏해야 그리움과 답도 없는 의문밖에 없었으니까. 진정으로 의미가 되는 것들은, 그럼에도 남아있는 존재들이었다. 서로에게 그리 다정치 않더라도 괜찮다. 그럼에도 여기에 남아있으면 된 거였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존재라야 비로소 ‘너’가 되고, 비록 너라고 발음했던 존재일지라도 여기에 없다면 ‘그 사람’이 될 뿐이었다. 적지 않은 공백과 여백으로 이어져왔겠지만, 그렇게나마 열다섯 번의 사계를 함께 겪어왔던 ‘너’가 그러하듯이. 그럼에도 남아있는 존재만이 의미가 돼, 배급될 다음을 긍정할 수 있는 원인으로 작동한다. 우리들의 지금은, 이로 말미암아 다음이 된다. _ 못난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2025.08.14 #인간관계 #생각 #글 #일상 #산문

보다 높은 건물에 가로막히면, 네모반듯한 창문은 금세 실업자가 된다. 그럼에도 개의치 않고 그 앞에서 서봤자, 창문 앞에 머무는 마음은 괜스레 흉흉해질 뿐. 보다 높은 건물에 살고 있을 위층의 누군가가, 창문 앞의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니까. 올려다본 그곳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해도, 한 번 그러해진 마음은 똑같이 흉흉하기만 하다. 그렇게 창문이 실직을 할 때, 암막커튼은 취직에 성공한다. 사람들의 세상살이와 다를 게 없다. 기실 세상에 놓인 것들이 대부분 그러하다. 하나하나마다 저마다 다 다른 듯하지만, 모아두고 나란히 두면 서로서로 닮은 구석밖에 없다. _ 마음의 도형, 2025.08.10 #산문 #글 #인생 #일상 #생각

며칠 전에는 시집을 세 권 샀습니다. 한 권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온 시집이었고, 다른 두 권은 비교적 최근에 나온 시집이었습니다. 새로 산 시집들 중 두 권은 다 읽었습니다. 다른 한 권,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온 시집은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습니다. 서점에서 집었을 때도, 구매하고 나서도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습니다. 기형도 시인의 유고시집이었습니다. 그와 비슷한 삶을 살았던 진이정 시인의 유고시집은 종이가 너덜너덜해질 만큼 읽었거늘. 어째선지 그의 입 속의 검은 잎은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문장들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상영된 영화라든가, 유행이라는 드라마는 굳이 안 보더라도 내용을 알 수 있듯. 시집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진짜 원흉은 유행이라면 일단 부정하고 보는 버릇이 원흉일 겁니다. 어릴 적에도 이랬는지 모르겠는데_ 어느 즈음부터인가 이렇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바깥’에 머무는 삶들이 더욱 각별해진 것도 같습니다. _ 진이정, 2025.08.10 #일상 #생각 #산문 #글 #책

감정이란 결국 시간을 이겨먹지 못할 거다. 나 지나온 날들은 여태까지 그래왔고, 또 이렇게 살아남아 머무는 게 증거다. 어쩌면 점점 익숙해지는 게 아닐는지. 그럭저럭 무뎌지고만 있는 건 아닐는지. 그러면 썩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싶은데_ 방법이야 어떠하든 그게 다 무슨 상관일까. 모양이 좀 못나고, 이래저래 볼품없어 보이더라도 어쨌든. 그렇게라도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고 여긴다. 어떤 누구라도, 스스로의 마무리가 불행이길 원치 않는 듯이. 그러하기 위해서라면 일단은, 살아남는 게 어떤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어차피 감정은 시간에 희석될 것이며, 견디며 살아남은 삶은: 언젠가의 행복을 바라볼 기회를 얻을 테니까. _ *행복行福, 2023.11.22 #산문 #생각 #행복 #글 #인간관계 . . *행복(行福): [불교] 삼복三福의 하나. 대승大乘의 행법을 지키며, 도심道心을 일으키어 인과의 도리를 믿으며, 대승 경전을 이해하고, 다시 남에게도 권함으로써 얻는 복을 이른다.

조금 더 어두워진 방은 언제부터일까, 다가올 내일을 어제로 발음하기 시작했다. 아직 오지도 않았지만, 이미 결말을 안다는 듯이 어제로 발음된 내일은: 그 빛깔이 벌써부터 잿빛. 한숨에 뒤섞인 담배연기를 빼닮은 빛깔이 돼, 보다 어두워진 방의 가장 낮은 곳을 맴돈다. 그렇게 맴돌고 있는 한숨과 담배연기는 어제를 잘 안다. 내일은 잘 모르지만 이미 알고 있단 듯이 군다. 응원해왔던 야구팀의 경기결과를 비관하는 버릇처럼, 의의라고는 참가에 둬야만 했던 도전의 역사처럼 말이다. 기대와 비관 그 어디쯤에 끼어있을 오늘은 뭐랄까. 분명히 말하자면 비관에 몇 발짝 더 치우쳐져 있을 텐데_ 작동은 멈추지 않는 내가 여기에 머문다. _ 밤안개, 2025.08.05 #생각 #일상 #산문 #글 #인간관계 . . *사진: 이혜미 시집, 뜻밖의 바닐라中

유리창 안쪽에 진열된 것들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는 듯한 일상이 아직도 여전하다. 얄팍하기만 한 형편이 문제라는 것쯤은 잘 알지만, 다른 부분에서 원인을 찾아내고픈 회피가 겹쳐진 오늘. 그저 형편없는 사람으로 머물고 있는 내가, 결핍으로 요약될 오늘 아래 흘러가고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어제보다 더 탁해졌다. 뭐가 됐든지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싶은 건 욕심일까. 아니면 앞뒤가 들어맞지 않는 모순일까. 어느 쪽에 나를 세워두면 괜찮을지 고민하는 사이, 내가 흐르는 방향이 내일이 아니라 어제였음을 깨단했다. 뭔가 단단히 잘못 굴러가고 있다는 감상이 짙어지는 중. 근데 내일로 흘러간다고 해서, 얄팍한 형편이 나아질 거란 보장은 없었다. 그러니까 어제로 흘러가고 있는 게, 아주 틀려먹은 건 아닐 거라고 희망해봤다. _ 렌즈구름, 2025.08.03 #생각 #산문 #인생 #일상 #글

누군가가 되돌아가고 싶은 시절을 물을 때면, 되도록 지금으로부터 가장 먼 시절을 답하곤 했었다. 서글픈 대답의 근저는 언제나 복기였다. 계가조차도 사치스러운 삶이 도대체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비틀린 건지 알고 싶은 무력함이었다. 뭘 어떻게 바꾸고 싶다, 그때가 많이 그리웠다, 같은 감상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무력한 궁금증뿐이었다. 정말로 어느 시절에 되돌아가서 바꾼다고 해서, 쉽게 바뀌거나 달라질 삶이 아닌 것 같았고. 딱 짚어 어느 시절의 어느 선택이 문제였다고 말하기에는: 그때의 나는 나름의 최선을 선택했던 것일 테니까. 서글픈 대답의 근저는 언제나 복기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결국엔 나도 사람이라서, 바꾸고 싶은 선택들이 있기야 있는데_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거늘 어쩌겠나. 어쨌든 다 좋았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겠지만, 어쨌든 간에 그땐 그게 최선이었다고 믿는다. _ 수읽기, 2025.07.25 #산문 #추억 #인생 #글 #생각

행복을 두고 자격 따위를 논하고 싶지 않았다. 흔하게 나도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싶었다. 누구나가 다 행복할 수 있다든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든가,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라든지 하는 말들 말이다. 행복을 떠올리면 뒤따라오는 말들을 곧이곧대로 믿고 싶었고, 행복을 두고서 자격 따위를 논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악인이 됐든지 선인이 됐든지 할 것 없이, 동등하게 주어지는 것이면 좋겠다고. 꼭 그랬으면 좋겠다고 자주 바라왔었는데_ 타고난 시대가 이래서 어쩔 수 없는 일인 건지. 아니면 나의 본래가 글러먹은 게 문제였는지. 이것도 아니라면 흔하게 나도는 말들이 가리키고 있던 게, 처음부터 행복이었던 적이 없었던 걸까. 행복한 사람들을 볼 때, 불행한 사람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행복에도 자격이 있는 것만 같다고, 그리 의심해버리곤 했다. _ 격자, 2025.07.29 #행복 #생각 #글 #일상 #산문

막연히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늘어진 그림자는 짧아져 타원이 됐는데_ 파란색 버스는 올 생각을 않고, 전광판의 도착알림은 아직도 ‘잠시 후’라는 말만 거듭한다. 어림잡아 5분은 넘게 지난 것 같은데 말이지, 들끓는 여름이 지독해서 기계마저도 헤매는 걸까. 파란색 버스가 기어코 바다로 떠나버린 걸까. 땡볕에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의자와, 그늘 따윈 손톱만치도 없는 정류장에서의 기다림은: 시작에 선행하는 기다림의 고역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집을 나서기 전에 미리 확인한 시간대로라면, 이미 도착했어야 될 파란색 버스였을진대. ‘예정’에 녹아있는 뜻이 ‘예상’이라는 사실을, 아스팔트 열기로 깨단할 즈음. 시작부터 어긋나버린 듯한 외출의 결말을 직감할 수 있었다. 막연히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늘어진 그림자는 짧아져 발밑에 숨었는데_ 파란색 버스는 올 생각을 않고, 전광판의 도착알림은 아직도 ‘잠시 후’라는 말만 거듭한다. _ 예상, 2025.07.29 #글 #일상 #산문 #인생 #생각

사람은 무언가를 알게 되는 만큼 거짓말이 능숙해진다. 스물다섯 번째 생일을 모른 척했던 날에 깨우친 사실이었다. 때문에 나는 “좋을 때”라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말을 의심하지도 않았다. 좋을 때라는 말 앞에 머무는 게, 내가 아니라는 확신만 표독스럽게 깎아냈다. 더는 어린 나이가 아니게 됐을 적부터 세상에 떠도는 흔한 말은: 나를 위해 떠도는 게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그래도, 아주 절망적인 처지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갖가지 불행으로 채워진 일생에 머무는 연약한 다행이었는데_ 확률과 막연함의 언쟁만 몇 곱절씩 조잡해질 뿐이었다. _ 조각칼, 2025.07.22 #산문 #인생 #일상 #글 #생각

그럼에도 괜찮다, 는 말 또한 결국 그럴 듯한 근거가 뭔가 하나쯤은 있어야 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버릇처럼 내뱉어봤자, 자신의 가치만 염가에 거래될 뿐이었다. 스물의 여름, 물류트럭에서 떨어져 어깨를 부여잡은 날. 찌푸린 인상에 전전긍긍하며 괜찮아요, 라고 말할 게 아니라 욕 좀 얻어먹더라도 나는: 병원을 갔어야 더 많은 것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런 사실을 5년 후에야 깨단했을 때, 길이와 무게가 더 지독해진 한숨엔 회색이 더 깊어졌었지. 그럼에도 괜찮다, 는 말은 뱉는다고 능사가 아니었다. 천성이 긍정적인 건 좋은 일이겠지만, 마땅한 근거도 없이 부여잡은 긍정은 혹사였다. 덧붙여 자기착취였고 나아가서는 가치의 추락이었다. 그런 말을 뱉기 위해서는, 그럴 듯한 근거가 뭔가 하나쯤은 있어야 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버릇처럼 내뱉어봤자, 자신의 가치만 염가에 거래될 뿐이었다. _ 염가, 2025.07.25 #글 #일상 #생각 #인생 #산문 . . _ *사진: 밤과 콘크리트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