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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로운 사랑으로 서툴게나마, 오지 않을 당신의 부재를 채워봤다. _시선과 버릇中 #책 #글 #에세이 #인간관계 #일상
언제나 돌아오기만 할 뿐인 계절처럼, 사람 또한 그러했으면 하는 마음이 깊다. 이를테면, 단절인지 짧은 공백인지도 모를 만큼. 그토록 멀어진 사이래도, 이내 돌아온 어떤 날. 어느 때에 다시 우리라고 부를 수 있게끔. 그렇게 다시 성립된 우리로 하여금 마주 볼 수 있도록. 언제나 돌아오기만 할 뿐인 계절처럼, 사람 또한 그러했으면 하는 마음이 깊다. _시선과 버릇中 #책 #에세이 #글 #인간관계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은 결국 보는 만큼. 본인이 수용할 수 있는 만큼이다. 그러니까, 내가 보는 세상과 갑부가 보는 세상은 심히 다를 수밖에 없다. 전부 다르다. 아이와 어른의 세상이 다르고, 너와 내 세상은 또 다른 모습이다. 어쩌면 세상은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 하나마다 저마다의 세상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하기에 우리네 세상은 충돌이 잦고, 질기고 비린 소음이 끊이질 않는 듯하다. _시선과 버릇中 #인간관계 #일상 #글 #책 #에세이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 혹은 믿음 따위가 줄어든다는 뜻이었다. 그저 어른스럽기만 한 누군가를 바라볼 때마다, 출처가 불분명한 추위를 느꼈던 것도 아마 이런 뜻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도 모르지. 하여튼 성장이란 말을 곱씹고 또 곱씹으면서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깨단한 뜻이란 이러했다.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 혹은 믿음 따위가 줄어든다는 뜻이었다. 더 이상 사람에게 환상을 품지 않는 것, 이러저러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지 않는 것, 오래토록 그러할 수 있다는 믿음을 내려놓는 것.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그럭저럭 성장을 이뤄낸 후에야 붙여지는 ‘딱지’ 같은 어른스러움은: 사람에게 나만 아는 ‘무언가’를 부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나 붙여지는 것이었고, 이를 깨단한 어떤 날로부터 더는 그것을 소원하지 않게 됐다. _ Life During, 2025.12.12 #산문 #글 #인간관계 #생각 #일상
너는 지나간 일을 돌아볼 때마다 몽글몽글한 기분이 든다 말했고, 그런 아기자기한 표현을 듣고 있던 나는 막연하기만 한 부러움을 느꼈다. 어쩌면 내게도 그런 기분을 들게 하는 추억거리가 하나쯤은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꾸며낸 웃음 뒤로 지나간 일들을 휙휙 넘겨봤지만 허튼 짓거리였다. 원래부터 그런 추억거리가 없었던 걸까, 아니면 너무 빨리 넘겨댄 탓에 미처 확인하지 못한 걸까. 너와 같은 기분을 들게 하는 추억거리는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그저 꾸며낸 웃음이 느슨해지는 감각만이 조금 더 분명해져서, 풀어진 나사를 조이듯이 미소를 지어내며 다른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지. 너와 내가 마주앉은 카페에선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같은 교복은 아니었지만 각자의 현실을 상징하는 옷을 입은 채, 학생증으로는 너무 짧은 밤이 아쉬워 밤길을 헤맸던 어느 시절. 쓰임새가 시원찮은 공원 벤치에 앉아, 너와 내가 함께 흥얼거렸던 그때 그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_ IF YOU*, 2025.12.04 #인간관계 #산물 #일상 #글 #추억 . . *BIGBANG – IF YOU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면 어느 무엇이 됐든 간에 의미가 돼버린다. 어디까지나 신나는 줄로만 알았지만 멜로디를 떼어낸 채 읽으면 읽을수록 슬퍼지는 노랫말이 그러하듯. 끊임없이 승인을 요구하는 스팸문자의 절박함도 가만가만 읽어보면 그 안에 서사가 깃들어 있듯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의미가 돼버리는 것들로 채워진 세상이었지. 어쩌면 이런 세상인 탓에 사람은 눈을 깜빡이는 버릇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고, 결코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는 가설을 세우는 도중이었다. 먼저 떠난 사람들의 기일로 채워진 십일월. 얼마나 그리워해도 따듯해질 수 없는 애도哀悼로 시간이 얹어둔 먼지를 닦아내는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이미 의미가 돼버린 전부를 헤아리면서 오답으로 남겨질 가설을 세우고 있었다. _ 영고성쇠榮枯盛衰*, 2025.11.29 #일상 #글 #인간관계 #산문 #생각 . . *영고성쇠(榮枯盛衰): 인생이나 사물의 성하고 쇠함이 서로 뒤바뀌는 현상.
어젯밤 불면의 출처가 두루뭉술해서 그럴까. 마주하고 있는 오늘이 칙칙하다는 감상을 깎아냈다. 다음을 약속했는데 시간과 장소를 정하지 않은 말뿐인 약속을 떠올릴 때의 기분과 똑같은 기분. 오늘은 뭔가 좀 달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었지만 배급된 오늘은 어쨌든 칙칙했다. 고기 위에 소금과 후추를 뿌리듯이 흩뿌려진 미세먼지 탓이라고 덧붙이려다, 어젯밤 불면의 출처가 두루뭉술한 탓일 거라고 덧붙였다. 칙칙한 오늘의 원인으로는 날씨 탓이 너무나도 훌륭하단 건 알았다. 하지만 날씨에 영향을 받기에 나란 놈은 이미 너무나도 많이 썩어있었다. _ 향수, 2025.11.24 #산문 #생각 #인간관계 #글 #일상
별도 없는 밤하늘을 헤매는 낙엽의 항해는 아마도 며칠이 지나면 끝나겠지. 해가 뜨고 웅덩이의 물이 다 마르면 낙엽은, 바짝 마른 채로 아스팔트 해변을 이리저리 뒹굴다가 부서지겠지. 녀석의 미래가 너무나도 울적해 담배를 깨물었다. 그러고 보면 담배의 재료도 바짝 마른 잎이었다. 문득 나의 탄생화가 낙엽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꽃말은 ‘새봄을 기다림’이라고 했는데_ 아무래도 너와 나의 쓰임새는 새봄을 위한 거름이었던 것 같지. 한 모금의 슬픔을 삼키고 두 모금의 체념을 뱉었다. 아직도 밤하늘을 헤매는 낙엽을 바라봤다. 물끄러미 바라본 낙엽의 항해는 그토록 볼품없고, 또 정처 없는 휘둘림의 연속이었다. _ 낙엽, 2025.11.20 #생각 #산문 #글 #일상 #인생
거듭 빗질하며 정돈했던 머리카락은: 외출의 시작을 반겨주는 바람에 흐트러져 조금 전의 수고를 잊어버렸다. 두꺼운 겉옷 위에 제멋대로 내려앉아선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끄덕거리는데, 차라리 묶어버리는 편이 좋았겠다고 생각하다가 관뒀다. 시원찮은 손재주로는 어떤 날의 당신에게 배웠던 대로 묶질 못하겠고, 신축성을 잃어버린 탓에 팔찌로만 기능하는 머리끈으로는 아무래도 애매할 테니까. 이러면 이런 만큼 저러면 저런 만큼 흐트러져, 겉옷 위에서 끄덕거리는 머리카락을 긍정해버리기로 한다.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다는 노랫말이 떠올랐다. 꾹 다물고 있는 입술 안쪽으로 곱씹어보는데, 얼마만큼 우물우물 곱씹어도 쉽게 끄덕거리긴 어려운 말이지. 모든 일, 그러니까 일상을 만들어가는 사소한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다니. 정말로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많은 의미를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걸까. 어째선지 나의 일생이 부정당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괜스레 뒤를 돌아봤다. _ I care about you, 2025.11.14 #글 #일상 #생각 #인간관계 #산문
의외로 그는, 꽃을 좋아하는 듯하다. 퍽 투박한 꼴에 어울리지 않게 그는 꽃을 좋아한다. 바쁜 때라도 꽃이 보이면 잰걸음 멈추거나, 멈출 수 없는 때라면 귀신 목이 돌아가듯 바라보곤 한다. 이따금씩, 앎이 사랑이라며 고집 닮은 말이나 하는 하찮은 그는. 꽃을 좋아한다. _시선과 버릇中 #일상 #글 #에세이 #책
시선에 얽매이는 기분이란 참으로 어렵다. 그래도 무관심보다는 좋겠거니 생각해 봐도, 역시나 거북한 건 도무지 긍정해 볼 수 없다. 이러하게 꺼릴 것 없이, 걸리적거릴 것도 없이 그냥저냥. 내 마음이 가는 만큼만 하고, 그러면 그런대로 살아야지 하다가도. 어떤 누구의 시선에 얽매인다는 기분이 들어버릴 때면, 괜스레 나를 점검하게 되니까. 시선에 얽매인다는 기분이란 참으로 어렵다. _시선과 버릇中 #글 #책 #인간관계 #일상 #에세이
서리달: 상월霜月 1. 서리달 얼마나 긍정을 부둥켜안아도 겨울이 싫다. 존나 싫다. 종말론적 생각을 연장시켜 말하면, 지구온난화가 급속도로 진행돼 겨울이라는 계절이 영영 사라졌으면 좋겠다. 해수면 상승이고 뭐고, 뭣 같은 계절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진다면 기꺼이 잠겨 죽을 각오다. 고교시절의 겨울. 생전 처음 가본 라오스에서 설렘보단 평온함을 느꼈던 것도. 이 지독한 겨울 혐오가 이유라면 이유겠다. 겨울이란 계절이 한 번 좋았던 적 없다. 겨울의 초입에 자리한 생일. 그딴 의미 없는 것을 이유로 애정을 가지기도 싫다. 인생을 돌아보면 끝이 안 보이는 비관이 이무기처럼 늪을 기어 다닌다. 이 비관의 시발점을 어찌 사랑할 수 있겠나. 그럼에도 찾아냈던 편린 닮은 존재들. 사랑할 뻔했던 인생. 나를 형이라 부르며 따르던 한 살 어린 코흘리갠 열두 살이란 나이로, 내가 따르던 형은 서리 얼어붙던 초겨울에 땅을 잃었고, 유일한 어른. 나의 스승님 김쌤은 눈발 짙어지는 정월 끝자락에 소천하셨다. 제설 끝난 산골짜기 군부대. 고향 친구의 자살 소식을 마지막으로 겨울을 향한 내 시선은, 혐오를 넘어선 무엇으로 뻗었다. 무엇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겨울이라도 탓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내 비관이 가리키는 건 소멸을 바라는 유아론이기에. 2. 려(戾) 추억이 된 오컬트 만화의 신간을 구매했다. 신간이라 부르기도 이상하다. 꽤나 예전에 나온 책이니까. 뭐, 어쨌든 구매했다. 중지와 휴재를 거듭하느라 언제 끝날지도 모르겠는 만화는 어느새 부제가 바뀌었다. 어그러지다, 또는 되돌린다는 뜻의 려(戾)가 틀어박혔다는 뜻의 롱(籠)을 밀어냈다. 올드한 노랠 틀어두고 한 장씩 넘기는 흑백. 역시 스가 시카오의 카제나기(風なぎ)와 어울린다. 그의 노랫말처럼 누구를 원망하면 되냐는, 무엇을 억누르면 되냐는. 슬픔 만연한 물음에 어울리는 주인공이다. 약속 없는 이별임에도 기다리는 주인공(主人公). 제 시간을 멈춰, 영원히 자신을 지켜보는 주인공은 언제쯤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이 이야기의 결말이 아름답다면 나 또한 그리될 수 있을까. 그들을 더 이상 꿈이 아닌 곳에서 만날 수 있을까. 먼 훗날에 이런 나도 감히 속 편히 웃어볼 수 있을까. 시계를 어디까지 돌리면 겨울을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을 수 있을까 #Mort_Histo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