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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수
말로 다 하기 어려운 마음을 씁니다. 그냥 지나치기엔 무수히 많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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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말 힘든 날이었어. 니 생각이 났어. 차라리 비라도 내리면 좋겠다.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며 쏟아지길 바랐어. 비는 내리지 않았어. 구름이 유난히 맑더라. 맑은 하늘을 보고 있자니 하늘이 미워졌어. 나도 우리의 매일도 저 하늘처럼 맑을 때가 있었는데 말이야. 잘 해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어. 힘을 낼 수가 없어서 힘에 부쳤어. 그리고 너의 응원에 뒤따라가지 못하는 내가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아 좌절감에 괴로웠어. -괜찮았어. 그런 건 중요치 않았어. 그저 나누고 싶었어. 어둠에서 방황할 때면 네 옆의 작은 빛이 되고 싶었을 뿐이야. 때론 적당히 어둡고 싶을 때가 있잖아, 눈부신 하늘이 버거울 땐 말없이 그늘로 데려다줄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밀려오는 우울을 덮으려 하는 너의 손을 잡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러 갈 테야. 힘내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어떤 모습으로 지내도 그것마저 사랑해. 그냥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언젠간 이 또한 지나갈 거란걸 아니까. 그래도 적어도 네가 힘에 들어 비가 내리기를 바라진 않았으면 좋겠다. 너의 우울이 너를 삼키진 않았으면 좋겠다. 네가 맑은 하늘을 미워하지 않고 예전처럼 다시 푸른 하늘을 보고 웃었으면 좋겠어.
매일 먹구름이 낀 하늘은 없는 것처럼, 매일이 불면에 수고스러운 밤이 아니길 바랄게요. 웃는 게 보기 좋은 당신은 미소와 나다움을 잃지 않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저 당신을 믿어요.
<결> 너만의 고유한 무늬는 충분히 가치있으니까.
과정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결과와 방향을 논하기 전에 먼저 지켜졌어야 할 것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해석과 별개로 과정과 대응의 흐릿함은 의문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바로 옆 동네에서 기회조차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황당했다.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쉬는 날로 지정할 만큼 중요한 일이라면, 하지 않은 사람은 있더라도 어떤 이유에서든,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사람들이 생겨서는 안 됐다. 만약 시험을 치르러 갔는데 일부는 답안지를 받지 못해 제출조차 할 수 없었다면 어땠을까. 왜 일어나서는 안 될 불합리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왜 모두에게 제대로 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는지. 어떻게 일을 해결 할 것인지 묻고 따질 것 같다. 일부에서는 목소리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가 더 크게 집중되는 게 아쉽다. 누가 옳고 틀린지, 누가 어느 목소리를 내는지. 왜 목소리를 내지 않는지. 그보다 이런 의문이 남는다. 우리는 정말 존중받고 있는가. 그리고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가.
서로는 서로의 세계를 모른다. 그래서 묻고 듣고, 조금씩 들여다본다.
벌써 올해의 절반이라니, 시간 참 빠르다. 그래도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지나와 있었네.
「더 좋은 것을 찾는다는 착각」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준이 생기는 줄 알았다. 더 좋은 것을 찾고 있다고 생각했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더 좋은 기회를 잡고 싶었고 더 좋은 선택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점점 더 신중해졌다. ‘이 정도 기다렸는데.’ ‘이 정도 참았는데.’ ‘이 정도 노력했는데.’ 그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선택은 점점 어려워졌다. 어쩌면 기준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속에는 기다린 시간에 대한 보상 심리가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더 좋은 것을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기다린 시간의 가치를 증명해 줄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관계에도 착화감이 있다. 오래 걸을수록 알게 된다. 나에게 맞는 관계는 따로 있다는 걸. 어느 날 예쁘지만 불편한 신발을 신고 외출을 했을 때, 새끼발가락에 물집이 생기고 상처가 났다. 아무리 좋은 신발이라 할지라도 눈으로만 봐서는 나에게 맞는지 알 수 없다. 직접 신어보고 길들이다 보면 알게 된다. 처음부터 착 감기는 신발이 있고, 지금은 괜찮은데 좀 지나면 발이 아플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신발도 있다. 그럼에도 끌리면 쉽게 놓지 못한다. ‘잠시니까 괜찮겠지. 이 정도는 괜찮겠지. 처음이니까 그렇겠지.’ 하며 내게 맞을 거라는 합리화를 한다. 조금 불편한 것만 참아내면 결국 내게 잘 어울리는 게 될 거라 생각했다. 참는 것도 그에 대한 애정이라 믿었기에. 하지만 끼워 맞추는 건 잠시라도 따가움은 며칠 내내 가더라. 그냥, 그저 맞지 않았던 것뿐이다. 그 이후로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지 않는 것처럼, 맞지 않는 관계에는 에너지를 쓰지 않게 된다. 내가 나로 온전히 있을 수 있는가로 묻는다. 괜히 애쓰지 않아도 되고, 그 사람과 함께 있는 내 모습까지도 편안하게 느껴지는 관계. 흔들리던 마음의 방향은 결국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가게 된다. 그 곳에서 느끼는 서로의 편안한 그 기류가 좋다. 오늘 오후는 볕이 좋아 눈을 감고 가만히 날씨를 느껴보았다. 편안했다. 편안하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뭘 하려고 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마음으로 가만히 머물 수 있는 것. 있는 그대로를 조금씩 편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그런 마음이 좋다.
파도 한 번 없이 잔잔했었던 당신인데,
끝까지 하루를 통과해 내는 사람, 넘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지내다 보면 자연스레 내게 닿는 것들이 있다. 찾고 있지 않아도 결국 내게 올 것들은 온다.
어떤 마음은 하루보다 오래 남는다. 그래서 내 것이 아닌 남의 하루를 더 조심스럽게 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