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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yroid09
비즈니스권영구 | 작가 | 소통 & 자기계발
*6년째 매일 소통과 자기계발에 대한 글을 쓰는 중 *책 <어른인데도 어린아이처럼 말하는 당신> *삼성전자 삼성생명 경기방송특강 | 브런치작가 *경희대출신 한의학박사 | 한방내과전문의 *이수역 경희은한의원 대표원장 #소통 #자기계발 #독서 #인간관계 #대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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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출간된 책 <어른인데도 어린아이처럼 말하는 당신> 본문중 일부 내용으로 출판사에서 만들어주신 카드뉴스입니다. 구입해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화창한 봄날씨에 꽃구경 많이 하셔요^^
@1471 <자기 객체화와 자기 객관화 : 당신은 잘 구분하는가> 1. “여성은 남성보다 자기 객관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그래서 외모에 신경을 더 많이 쓰는 편이죠.” 의외로 자주 듣게 되는 문장이다. 어딘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자기 객관화는 긍정적인 의미인 줄 알았는데 그로 인해 외모에 집착하게 된다니 무슨 황당한 논리인가. 2. 여기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숨어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기 객체화’와 ‘자기 객관화’ 용어의 혼돈에서 생긴 결과다. “둘 다 비슷한 말 아닌가요? 굳이 그렇게까지 단어를 따질 필요가 있나요?” 두 단어만 놓고 보면 구분이 어렵다. 하지만 영어 원어를 보면 차이가 명확해진다. 자기 객체화는 영어로 ‘Self-Objectification’이다. 주체성을 잃고 자신을 타인의 평가 대상으로 취급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Barbara Fredrickson과 Tomi-Ann Roberts가 1997년에 발표한 연구에 나온다. 핵심은 개인이 사회 속에서 타인의 시선이라는 압력을 받으면 자기 스스로도 그런 시각을 갖게 된다는 내용이다. 성을 상품화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 여성 스스로도 남들 시선을 신경 쓰며 자기를 외모의 잣대로 평가하게 된다는 설명이 대표적이다. 3. 반면 ‘자기 객관화’는 심리학 용어로 공식화되지는 않았지만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자기를 바라보자’는 좋은 취지의 문장을 짧게 요약한 결과물이다. 말을 줄이고 나니 두 표현이 상당히 비슷해졌다. 어느새 두 가지 용어 사이에서 혼돈을 겪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심지어 두 개념을 뒤죽박죽 섞어서 처음에 제시했던 희한한 문장으로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기 객체화’라는 개념이 낯설고 새로운 내용이다 보니 입에 착착 붙는 ‘자기 객관화’ 개념으로 오해하면서 생긴 사고다. 두 용어는 발음이 비슷하지만 의미는 정반대다. ‘자기 객체화’는 불안과 우울로 이어지기 쉬운 안 좋은 현상이고, ‘자기 객관화’는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지는 훌륭한 관점이다. 4. 비슷한 부분도 있기는 하다. 두 개념 모두 나 자신이 아닌 남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타인의 관점으로 나를 보는 행동은 나쁠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다. ‘자기 객체화’에 빠지면 별로이고,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어야 유익하다. 핵심은 타인의 평가를 ‘어떻게’ 신경 쓰는가에 달렸다. 자기 객체화는 매 순간 ‘나는 어떻게 보일까?’에만 집착한다.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자기 할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반면 자기 객관화는 자기 합리화의 틀을 깨뜨리는 건강한 도구로 쓰인다. 내 체형에 맞지 않는 옷을 한사코 고수하는 ‘고집’도 아니고, 남들 의식하느라 창피해하며 입어볼 엄두도 못 내는 ‘자기 객체화’도 아니며, 자신의 체형을 돋보이게 해 줄 옷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찾아가는 모습이다. 5. 요약하자면 자기 객체화는 ‘지나친 남 눈치’, 자기 객관화는 ‘메타인지’라고 할 수 있겠다. 메타인지는 ‘생각에 대한 생각’이라는 설명이 자연스럽다. 자신의 생각이 과연 합리적이고 객관적인지 한 발짝 물러서서 관찰하고 조절하는 능력이다. 감정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거나 주눅 들게 하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자기 객관화’가 가능하다. 이제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 대신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에 관심을 가져보자. *3줄 요약 ◯자기 객체화는 타인의 시선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평가 대상으로만 보는 안 좋은 현상이다. ◯자기 객관화는 메타인지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성장하는 훌륭한 관점이다. ◯두 개념은 한 글자 차이지만 불안과 성장이라는 정반대 결과로 이어진다.
@1470 <남에게 조언하면 내가 먼저 바뀐다> 1. “지금 이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처신하면 좋을까요?” 한 후배가 어려운 일이 생겼다며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밥까지 사 주면서 몇 시간 동안이나 열변을 토했다. 이만하면 혼자서도 잘 해결할 수 있겠지 싶었다. 한참 뒤에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아직 고민 중이라고 한다. 오, 이런. 2. 그때 조언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저렇게 주저하고 있나 싶었다. 어떻게 말했어야 그 후배가 즉각 조언대로 행동하도록 도울 수 있었을까 고민하게 된다. 정말 조언 내용이 부실하여 따르지 않았다면 아무 할 말이 없다. 매우 합리적인 솔루션을 들어도 계속 확신하지 못하고 가만히 멈춰있는 사람이 많다. 이 현상이 얼마나 흥미로웠으면 전문가들이 연구까지 했을까. 펜실베니아와 예일대학의 연구팀이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한 적이 있다. 다이어트나 저축 같은 특정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실행 능력이 높아지는지 확인하는 연구였다. 전체를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한 그룹은 해당 전문가에게 조언을 듣도록 했고, 다른 그룹은 비슷한 고민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아는 내용을 가르쳐 주도록 했다. 과연 결과는? 3. 몇 주 뒤에 그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행동했는지 확인했다. 놀랍게도 전문가에게 완벽한 조언을 들은 그룹보다 남에게 상담을 해준 그룹에서 훨씬 실천 비율이 높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정보가 부족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 가만히 있다고 말해왔다. 어쩌면 꼼짝하지 않아도 될 핑계를 찾는 이기적인 자기 합리화였을지도 모른다. 정답에 가까운 해법을 안다고 해도 실행력이 더 높아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남에게 조언하고 가르쳐주면서 행동위주의 마인드셋을 장착하게 된다. 내가 완벽하게 알지 못해도 나보다 모르는 사람에게 지식과 경험을 설명하는 순간 자기 자신의 무의식도 깨어난다고 분석한다. 한마디로 말해 자기 말에 본인이 설득당하는 셈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설득 효과’라고 부른다. 남을 이끄는 과정 속에서 자기 자신이 먼저 변하기 시작하는 현상이다. 일종의 무의식적인 ‘책임감 효과’로 보기도 한다. 남에게 권한 말을 본인도 실행하지 않으면 무척 찝찝하다. 4. 물론 나보다 훌륭한 사람의 조언은 많이 들을수록 좋다. 다만 아는 것과 행동은 별개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고 훌륭한 인사이트를 장착하고 있어도 모든 일상을 완벽하게 세팅하기는 힘들다. 자신이 알게 된 그 놀라운 사실을 남에게 전해주는 순간 그 지식은 내 안에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킨다. 배우는 사람보다 가르치는 사람이 더 많이 성장한다는 말은 매우 일리 있는 견해다. 물론 상대방이 내 생각을 듣고 싶어 하는지 먼저 확인은 해야 한다. 알고 싶거나 나아지려는 의지가 없는데도 억지로 가르치려 들면 오히려 역효과만 생긴다. “에이, 저는 남한테 조언할만한 능력이 없어요.” 그리 대단한 내용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위에서 제시한 연구에서도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이야기를 건넸지만 뚜렷한 효과가 있었다. 5. 조언을 들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된다. 내가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면 그 행동을 ‘왜’ 해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한다. 이제부터 고민이 있으면 선배나 멘토에게 먼저 조언부터 구하자. 단, 그대로 멈추면 안 된다. 자신이 들은 내용을 말이나 글로 누군가에게 꼭 전해보자. 타인에게 지식을 나누는 이들은 절대 남 좋은 일만 시키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 경험을 통해 본인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는 중이다. *3줄 요약 ◯조언을 듣기만 할 때보다 남에게 조언할 때 실천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가르치는 과정에서 자기 설득 효과가 나타나 내 무의식이 먼저 깨어난다. ◯조언을 들은 뒤 그 내용을 누군가에게 잘 전해야 빠르게 성장한다.
@1469 <똑같이 서당개 3년이라도 풍월을 읊는 개는 따로 있다> 1. “이력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A전자 3년, B상사 2년의 경력이 있습니다.” 그렇게 큰 회사에서 오래 있었다고 하니 업무력만큼은 의심할 필요가 없을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면접 볼 때 조금 더 디테일하게 검증했어야 했다. 2. 서당개 두 마리가 있다. A는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지낸다. “시장에 있을 때는 먹을 것도 많았는데 서당에서는 늘 배가 고프네.” B는 이 낯선 환경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하늘천 따지? 매일 들으니 귀에 못이 박히겠네. 저 아이들은 이 간단한 내용을 왜 자꾸 까먹지? 하늘은 검고 땅은 노랗다는데.” A는 서당에서 10년을 보내도 늘 똑같은 생활을 반복한다. 오늘 먹이를 맛있게 먹은 뒤 내일은 무슨 메뉴가 나올지만 궁금하다. B는 3년이 지나자 어설프게 천자문을 외운다. 서당개 3년 만에 풍월을 읊는 레벨에 등극한다. 3. 환경이 중요하다는 말은 너무도 흔하다. 맹자의 어머니 역시 그런 관점에서 이사를 세 번이나 다녔다. 하지만 환경이 아무리 바뀐다 해도 본인이 거부하면 아무 소용없다. 맹자처럼 주체적으로 환경에 녹아들어야 의미가 있다. 서당개 A는 시장통에 있든 서당에 있든 아무 상관이 없다. 어디라도 배고프지 않게 제때 먹을 수만 있으면 대만족이다. 반면 B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다. 들은 내용을 흙바닥에 다시 써보는 정성이 없어도 괜찮다. 매 순간 집중하며 귀를 기울이기만 해도 충분하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한 반복되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어느새 그 내용이 자기 안에 스며들어 있다. 서당개도 서당개 나름이다. 그 정도 마음씀씀이 차이만으로도 미래가 달라진다. 주위에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정보를 소음으로 여기지 않고 작은 관심을 가졌을 뿐인데 말이다. 4. 몇 년 후 서당개 A, B가 같은 회사에 지원한다. 둘 다 이력서에 “명문 서당 3년 경력”이라고 썼다. 인사팀 눈이 번쩍 뜨인다. 그 서당에서 3년 있었으면 정말 똑똑하겠는데? 둘 다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서당에서 무엇을 배웠나요?” A는 시큰둥하게 답한다. “배우긴요, 매일 잘 먹고 잘 잤죠. 가끔 훈장님이 아이들 혼내면 시끄러워서 잠을 깨기도 하고요.” B의 대답은 남다르다. “3년 들으니 천자문 구조는 대충 파악하겠더군요. 훈장님 교육을 지켜보면서 더딘 학생한테 회초리만이 능사는 아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5. 사람도 마찬가지다. 같은 일을 아무리 오랫동안 반복해도 어떤 태도로 임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천지차이다. 같은 환경 속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날 수 있다. 과연 지금 당신은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적당히 소일하며 허비하는가, 아니면 한 발씩 전진하고 있는가. *3줄 요약 ◯같은 환경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도 어떤 자세인가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력서의 경력 한 줄보다 중요한 핵심은 그 시간을 보낸 태도의 차이다. ◯주변 정보를 소음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작은 관심만 가져도 3년 후 당신은 크게 달라져 있다.
@1468 <주선자의 제안이 항상 한 가지씩 아쉽다면> 1. “오늘 어땠어? 애프터 신청 할 거야?” 소개팅을 주선한 친구가 내 의향을 묻는다. 외모면 외모, 성격이면 성격 어디 한 군데 흠잡을 곳이 없었다. “다 좋은데 목소리가 좀 이상해서...” 2. 딱 퍼즐 하나가 빠진 느낌이라 더 아쉽다. 그 한 가지만 괜찮으면 정말 완벽한데. 세상 어딘가에 그런 사람이 반드시 존재하리라 믿으며 굴러들어 온 복을 냅다 걷어찬다. “네 말대로 그런 사람은 분명히 있어. 그런데 그 사람이 과연 너를 만나고 싶어 할까?” 벌써 몇 번이나 비슷한 방식으로 거절하고 나니 이번에는 주선자도 살짝 짜증을 낸다. “목소리가 안 좋고, 키가 좀 작고, 직장이 아쉽고... 그래서 너한테 그런 기회들이 온 거야. 그 부분이 완벽했으면 너한테 소개도 못했어.” 이 녀석. 그동안 많이 답답했나 보다. 오늘은 아주 제대로 팩트폭행을 날린다. 내가 아직 진짜 아쉽지가 않아서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느끼나 보다. 3. 소개팅이든 직장소개든 이러한 선택의 순간이 지나갈 때마다 우리가 놓치는 구석이 있다. 보통 나와 상대의 희망사항만 놓고 저울질하지만 언제나 그 사이에는 ‘주선자’가 끼어 있다. 나와 상대를 모두 아는 입장에서 이 만남을 성사시킨 그 사람, 나와 그 회사 상황을 잘 평가하여 서로를 연결해 준 헤드헌터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왜 나에게 이렇게도 아쉬운 기회를 제시했을까. 나를 무시한 행동이었을까. 아니다, 주선자는 상대방과 나 양쪽 모두의 눈치를 본다. 어느 한쪽에서도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해 기나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다. 그는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닌 자기 자신의 편일 뿐이다. 주선자에게는 이 커넥션에 자신의 평판이 걸려있다. 양쪽 모두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냉정하고도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 4. “아니, 너는 나를 뭘로 보고 이런 회사를 소개해 준거야?” 이런 말을 하고 싶은 순간이 와도 꾹 참아야 한다. 내 앞에서는 언제나 내 편인 척 나를 지지해 주었지만 그가 냉철하게 바라보는 나의 능력치가 딱 그 정도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대체로 세상의 판단은 우리 생각보다 냉정하고도 현실적이다. 그 내용을 받아들일지 여부는 본인 자유지만 외면한다고 해서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오죽하면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볼 때도 이미 포토샵 보정이 된 모습으로 다르게 보인다. 5. 이제 선택의 순간이다. 당신의 주관적 판단대로 밀고 나갈 것인가, 아니면 제3자인 주선자의 시각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인가. 만약 제3자의 판단을 믿는다면 두 가지 옵션이 가능하다. 지금 전해 들은 제안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내가 이 정도로밖에 안 보인다 이거지?’하며 현실적인 평가를 자극의 기회로 삼아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는 길이다. 괜히 사이에 낀 주선자만 들들 볶지 말라. 주선자가 건넨 거울 속 당신 모습을 순순히 인정하든, 아니면 그 거울을 밟고 일어서서 더 높이 도약하든 당신의 선택이다. *3줄 요약 ◯아쉬운 소개팅이나 직장 제안은 주선자가 본 당신의 객관적 위치를 보여준다. ◯주선자는 자신의 평판을 걸고 양쪽을 냉정하게 매칭하니 그 판단을 무시하기 어렵다.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든 이를 발판 삼아 한 단계 성장하든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1467 <당신만 골라 지적하는 사람의 숨은 심리> 1. “오늘 바지 색깔이 재킷하고 안 어울리는데?” “웃을 때 앞니가 너무 벌어져 보여. 치과에 한 번 가봐.” 전부 사실이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오늘 바지색은 너무 튀었고, 치아상태는 늘 나의 콤플렉스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별로일까. A는 왜 나를 만날 때마다 꼭 저런 말만 할까. 2. “나한테 무슨 불만 있어? 왜 자꾸 나한테 트집만 잡는 거야?" “생사람 잡지 마. 내 말이 틀렸어? 남들한테 물어봐.” 용기 내어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어차피 결과는 뻔하다. 나만의 그 느낌적인 느낌을 말로 명확하게 드러내기는 어렵다. 여기 그 답이 있다. 그가 하는 ‘조언’의 정체를 분명히 밝히면 모든 궁금증이 저절로 풀린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도 당신과 같은 기준으로 도움말을 하고 있을까. ‘그러고 보니 나보다 훨씬 촌스럽게 입고 다니는 민철이에게는 아무 소리도 안 하네?’ ‘덧니가 엄청 심한 정민이한테는 치아이야기는커녕 오히려 피부 좋다며 칭찬까지 하네?’ 3. 이제 결론이 나왔다. 그의 타깃은 ‘개선점’이 아니라 ‘당신’ 그 자체였다. 무의식을 들여다보면 당신을 향한 불편한 감정이 깔려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든 지적할 거리를 일부러 찾아내는 중이다. 그가 유독 엄격한 기준으로 조언을 반복하는 이유는 당신이 잘되길 원해서가 아니었다. 타격감 있는 까칠한 한마디로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본심이다. 먹잇감이 바로 포착되지 않으면 샅샅이 뒤져서라도 기어이 찾아낸다. 공항에서 마약탐지견이 가방 냄새를 맡듯이 구석구석 스캔한다. 4. 이런 일은 일상에서도 흔하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발뒤꿈치를 보고도 잔소리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내용 자체는 완벽하게 합리적이지만 듣는 며느리는 심술이 난다. 말하는 사람의 저의를 고스란히 느끼기 때문이다. 그저 우아하게 상대를 괴롭히는 비겁한 측면공격에 지나지 않는다. 큰소리를 내고 험악한 표현을 쓰더라도 상대가 진정 나를 위한다는 기분이 들기만 하면 이내 수긍하게 되어 있다. “억울하네요, 저는 괴롭힐 의도가 없었어요. 그저 도와주려고 했을 뿐이에요.” 그 마음 역시 이해한다. 그의 무의식은 당사자조차 속인다. 이를 ‘선택적 지각’이라고 부른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마음이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의 단점만 선명하게 보인다. 의도와 상관없이 흠집만 또렷하게 드러난다. 5. 둘 사이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이유를 명확하게 찾아내기는 어렵다. 까마득한 옛날 그 하나의 사건을 원인으로 단정 짓기도 애매하다. 자잘한 이벤트들이 쌓이고 쌓여 고유의 밉상 이미지가 굳어진 결과다. 누군가 당신에게 계속 지적질을 반복하고 있다면 한 꺼풀 아래 숨겨진 그의 마음속 불만부터 해소시켜야 한다. 하나하나 고쳐가며 할 말 없게 만들겠다고 나서면 상대는 오히려 더 열불이 난다. 불만을 해소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다. 관계 회복을 위해 담판을 짓든, 감정 소모를 줄이기 위해 손절처리하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하자. 어느 쪽이라도 좋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저절로 나아지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3줄 요약 ◯누가 당신에게만 반복적으로 지적한다면 조언을 가장한 공격일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를 싫어하면 무의식적으로 단점만 선명하게 보인다. ◯문제를 고치려 들기보다 어떤 식으로든 불편한 관계부터 정리하거나 해결하자.
@1466 <왜 발표는 잘하면서 대화는 서툴까> 1. “발표는 제가 다해도 좋아요. 대신 차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자리는 무조건 빼주세요.” 10명 앞이든 100명 앞이든 발표만 시키면 김대리는 훨훨 날아다닌다. 떨리는 기색 하나 없이 능숙하게 해낸다. 그런 김대리가 스몰토크에 이렇게 약할 줄이야. 2. 발표든 대화든 모두 말을 한다는 사실은 같지만 그 방식이 전혀 다르다. 발표는 일방적이다. 일부러 질문을 받지 않는 이상 미리 준비한 각본을 달달 외워서 일사천리로 풀어내면 그만이다. 발표를 잘하는 사람은 본인 생각을 조리 있게 잘 표현한다.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돈하여 논리적인 순서에 맞춰 흐름을 탄다. 청중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듣기만 하면 된다. 반면 대화는 메시지를 주고받는 교신이다. 내가 한마디 꺼내면 상대도 한마디 할 권리를 가진다. 서로 상대방 이야기를 들은 뒤 각자 의견을 밝힌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무리 많아도 상대의 반응에 따라 대화내용은 수시로 바뀐다. 상대방 말을 귀담아듣지 않으면 다음에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당황하게 된다. 3. “저는 열심히 경청하면서 대화하는데도 소통이 잘 안 돼요.” 이런 경우가 꽤 많다. 발표에 유능한 사람이 일상대화에 버벅거리는 패턴은 대부분 비슷하다. 상대방 말을 열심히 듣기는 한다. 다만 그 내용을 자기 말에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맥락은 무시하고 본인이 원래 준비했던 멘트를 그대로 꺼낸다. 가끔은 상대방의 정당한 발언기회를 빼앗기도 한다. “말 끊지 말고 끝까지 들으신 뒤에 말씀하시면 안 될까요?.” 30분 동안 혼자 떠든다. 결국 그는 대화를 발표처럼 하는 중이다. 상대방이 하는 말도 그의 발표로 간주하고 묵묵히 듣기만 한다. 상대방 말에 아무 토를 달지 않고, 자신의 말도 그대로 받아들여지길 원한다. 다시 말해 쌍방향 교신을 하는 소통이 아니라 일방통행을 서로 번갈아 하는 셈이다. 각자 자기 하고 싶은 말만 계속 내뱉으니 의견을 좁히거나 호감을 느끼기 어렵다. 4. 소통은 브리핑이 아니다. 아나운서가 기사문을 읽듯 나 혼자만 마이크를 쥐고 내려놓지 않는다면 굳이 상대방을 앞에 두고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이런 대화는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로 보내도 전혀 상관없다. 초보운전자가 서울에서 고속도로에 들어가 부산까지 직진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앞만 보고 달리며 자기 할 말만 계속 내뱉는다. 차선도 바꾸지 않는다. 이런 행동이 습관화 되면 일상에서도 그 패턴이 그대로 드러난다. 커피전문점에서 진상고객으로 취급받는 주요 유형중 하나가 된다. “드시고 가시나요?”/ “(건성으로) 네”/ “여기 있습니다.”/ “가져갈게요, 포장해 주세요.” 5. 소통은 나와 상대방이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무조건 자신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니까 반응은 살피지도 않고 일방적인 발표만 한다. “억울해, 아무 말 안 했지만 열심히 들었다니까. 전부 그대로 말해볼까?” 경청하라는 말은 상대의 말을 모조리 외우라는 의미가 아니다. 맞장구를 치고 자기 의견을 말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생각과 마음을 나누라는 뜻이다. 발표는 일방적인 전달이고 대화는 서로 소통하는 과정이다. 대화할 때마다 꼭 체크하자. 혹시 소통을 빙자한 발표만 하고 있지는 않은가. *3줄 요약 ◯발표는 준비한 각본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고, 대화는 상대와 생각을 주고받으며 공감대를 만드는 과정이다. ◯발표 고수가 대화에 약한 이유는 상대 말을 들어도 그 맥락을 무시하고 자기 말만 이어가기 때문이다. ◯서로 일방통행만 반복하는 대신 맞장구치며 생각과 마음을 나누어야 진정한 소통이 된다.
@1465 <남한테는 천사표, 가족에게는 악마인 사람들> 1. “팀장님 회사에서는 어떠신가요?” “얼마나 잘 챙겨주시는데요, 든든한 핵우산이세요. 사모님 앞이라고 괜히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다른 팀 사람들 모두 저희를 엄청 부러워해요.” 집들이에 놀러 온 팀원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이어간다. 그런데 와이프의 표정은 점점 굳어만 간다. 어찌 된 영문일까. 2. “당신 정말 너무해. 사무실에서는 신입사원 실수도 너그럽게 봐주고, 회식 자리에서는 먼저 분위기도 띄운다며? 집에서는 신경질만 내고 말 걸어도 피곤하다면서 불친절하게 대하고.” 알고 보니 팀장은 두 얼굴의 사나이였다. 사무실에서 그렇게 친절한 미소를 짓고는 집에만 오면 차갑고 냉랭하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런 유형을 ‘역할 연기’에 능하다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본인이 맡은 임무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수행한다. 문제는 계급장 떼고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할 때 시작된다. 일대일 인간관계는 사회적 역할과 다르다. 누가 평가하거나 점수를 매기지도 않는다. 노력해도 칭찬이 없고 대충 해도 페널티가 없으니 굳이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3. 역할 연기에 집중하는 이들에게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성장과정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그 정서적 결핍을 채우기 위해 성과 지상주의에 눈을 돌린다. 학교 공부, 운동 등수, 회사 실적 등 숫자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로 한다. 그에게는 칭찬의 말이 유일한 생명줄이다. 누가 인정해주지 않으면 금방 질식이라도 할 듯 답답해한다. 반면 가정이나 친구는 다르다. 그들과의 관계에서는 본인 역량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객관적 수치로 자신을 인정해 주는 심사위원들이 아니므로 가볍게 여긴다. 4. 가장 큰 피해자는 그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다. 최소한의 인간적 배려를 찾아보기도 어려우니 항상 불만 가득이다. 차라리 천성 자체가 무뚝뚝한 사람이라면 이해가 아니면 포기라도 하겠다. 안과 밖에서 완벽하게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니 두 배 더 서운하다. ‘남들한테 저렇게 친절한 사람이 나한테만 저렇게 굴면 혹시 나한테 문제가 있나?’ 와이프나 아이들은 어느새 스스로를 탓하게 되기도 한다. 본인 역시 불행하기는 마찬가지다. 인정 욕구는 그 어떤 칭찬으로도 완벽하게 채울 수 없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초고속 승진을 해도 언제나 마음 한구석은 텅 비어 있다. 어느새 집에서도 외면당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가족에게 서운함을 느낀다. 5. 회사 약속은 중요하지 않아도 칼같이 지키려 하고 가족 외식 약속은 대수롭지 않게 어긴다면 당신 또한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 지난 시절의 애정결핍은 다른 방식으로 채워보자. 그리고 그 해결에 가장 크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원군은 다름 아닌 가족과 친구들이다. 어쩌면 지금껏 당신은 엉뚱한 무지개만 좇으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진짜 파랑새는 당신 곁에 있다. *3줄 요약 ◯‘역할 연기’에 능한 사람은 회사에서 완벽하지만 집에 오면 냉담한 모습을 보인다. ◯성장 과정에서 무조건적 사랑을 받지 못하면 타인의 인정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진짜 행복은 성과가 아닌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찾아야 한다.
@1464 <첫인상 망쳤어도 최신 효과로 반전시키기> 1. “그냥 다른 회사로 옮길까 봐요, 출근 첫날부터 지각해서 완전히 찍혔어요.”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많이 듣는다. 처음에 안 좋은 이미지를 주면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며 좌절하기 쉽다. 걱정 마라, 우리에게는 ‘초두 효과’ 못지않게 위력이 대단한 ‘최신 효과’의 기회가 아직 남아있다. 2. 김 부장은 평소 깔끔한 성격에 일처리도 확실한 슈퍼 엘리트다. 상사의 총애와 부하직원의 존경까지 한 몸에 받고 있는 대단한 인재다. 작년 송년회에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흥에 겨워 부어라 마셔라 하는 분위기 속에서 김 부장도 평소보다 과음했다. 갑자기 머리에 넥타이를 질끈 동여매더니 여러 사람들에게 말을 함부로 하며 추태를 부렸다. 10년 동안 힘들게 쌓아온 이미지가 단 하루 만에 무너졌다. 그날 이후 사람들은 ‘넥타이 김 부장’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니 덤덤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직원들에게 일일이 사과편지와 함께 선물을 돌렸다. 평소처럼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에만 집중했다. 반년이 지나자 그 일을 새삼스럽게 거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이론이 ‘초두 효과’다. 처음 이미지가 상대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니 좋은 모습을 보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초두 효과가 전부는 아니다. 사람의 머리는 ‘다행히도’ 그리 완벽하지 않다. 시간이 흐르면 처음의 그 강렬했던 기억마저 서서히 잊는다. 그 빈자리는 ‘최신 효과’가 채운다. 가장 최근에 보고 들은 정보가 그 사람의 평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뜻이다. 김 부장의 사례가 최신 효과의 살아있는 증거다.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좋은 행동을 계속 이어가며 최신의 기억을 갱신해 나가면 된다. 게시판에 악플 하나가 달려도 선플 수백 개가 달리면 뒤로 밀려나 눈에 띄지도 않게 되는 현상과 비슷하다. 4. “당신 변했어,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사람이 변하는 유형은 크게 2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첫인상을 가식으로 화려하게 꾸민 뒤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는 유형이다. 또 한 가지는 초반에 던진 좋은 인상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며 지금의 행동을 함부로 하는 패턴이다. “최신 효과를 좋게 이어가려면 매일 잘 보여야 된다는 말이네요? 그럼 너무 힘들잖아요.” 맞다, 바로 그 말이다. 인간관계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잘 유지할 수 있다. 한때 정성을 기울였다 해도 지금 소홀하면 금방 식어 버린다. 첫인상의 ‘초두 효과’는 새로운 기회를 열어 주고, ‘최신 효과’는 지금 현재 당신에 대한 평가를 좌우한다. 5. 겉치레로 잘 보이려고만 애쓰지 않았으면 한다. 그 시간과 노력을 진짜 실력 쌓는 쪽으로 투자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업무력이든 소통능력이든 꾸준하게 자기 계발에 에너지를 쓰는 사람은 항상 최고 수준의 최신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바로 ‘업데이트를 멈출 때’다. 스스로에게나 남에게나 무관심해지기 시작하면 그에게는 내리막길만 남는다. *3줄 요약 ◯첫인상이 안 좋았다고 좌절하지 말고 좋은 모습을 계속 업데이트하라. ◯초두 효과 못지않게 최신 효과도 강력하다. ◯겉치레보다 실제 자기 계발에 집중하면 언제나 최고의 인상을 남길 수 있다.
@1463 <믿음과 신뢰를 착각하면 관계가 무너진다> 1. “저 사람은 참 믿음직스러워.” “그 사람은 내가 정말 신뢰하는 사람이야.” 믿음과 신뢰. 비슷한 단어 같지만 뉘앙스는 좀 다르다. 둘 다 좋은 의미는 분명하지만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면 사고가 나기 쉽다. 2. “오빠 믿지?” 믿는다는 말은 무조건적인 상황을 전제로 할 때가 많다. 절대자에 대한 종교적인 믿음이 대표적이다. 자녀나 부모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애정도 그에 못지않다. 믿음에는 이유가 필요치 않다. 막연하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근거 없는 확신이다. 아무런 조건이나 한계도 없다. 그 어떠한 논리도 믿음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맹목적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아들이 시험을 망치든 사고를 치든 부모는 아이 편이다. 이성이 아닌 본능적인 쏠림이다. “우리 아이가 괜히 그랬을 리가 없어. 분명히 무슨 사정이 있었을 거야.” 3. 그에 반해 ‘신뢰’는 이성적인 판단의 결과다. 과거 수많은 행동 패턴에서 나온 확률적인 기댓값에 의해 미래를 예측하는 과정이다. 즉 그동안의 행적이 신뢰의 크기를 좌우한다. 10년 동안 납기일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면 그 업체에 대해 ‘신뢰’할 수 있다. 새로 거래를 시작한 업체가 한 달 동안 성실히 납품해 주었다 해도 아직 마음 놓기는 이르다. 신뢰하던 거래처가 연속 세 번 약속을 어기면 어떻게 될까. 10년 쌓아온 신뢰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은행에서도 과거의 신용기록을 조회하여 미래의 사고 가능성을 예측한다. 신뢰는 쌓기도 어렵지만 그대로 유지하기는 더 힘들다. “이제 대한상사 납품은 믿을 수가 없네요.” 말로는 ‘믿는다’는 단어를 썼지만 그 진짜 의미는 ‘신뢰’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다. 4. 이 두 단어를 엉뚱하게 쓰면 문제가 터진다. 믿어야 할 가족에게 데이터에 기반한 신뢰를 요구하고, 사례중심으로 신용을 증명해야 할 조직생활에서 신뢰대신 믿음을 주장하면 곤란하다. “네 행동을 3개월 동안 분석해 봤어. 알아서 방청소 한다고 했는데 청소한 날은 겨우 17일이야. 네 말의 신용도는 18.9%밖에 안돼. 이제 너에게 맡겨둘 수 없겠어.” 가족끼리 너무 한다 싶다. 이성적인 논리를 강조할수록 감정은 얼어붙는다. “팀장님, 이번만은 꼭 믿어 주세요. 다음 주까지 보고서 꼭 완성해서 보여드릴게요." 기한을 지킨 횟수가 손에 꼽을 만한 수준인데 또 이런다. 믿음의 관계에도 역시 지켜야 할 선은 있다. 그 선을 함부로 넘나들기 시작하면 얼마든지 깨질 수 있다. 남편 사업이 부진하다고 해서 믿음이 약해지지는 않지만, 외도를 반복하고 가족을 폭행한다면 더 이상 믿기 어렵다. 본인이 판을 깨뜨렸다. 5. 인간적인 유대를 소중히 여기며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믿음’은 계속 유효하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상대는 넓은 마음으로 포용한다. 신뢰의 관계에서는 매 순간 새로운 성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평가에 부합하는 행동이나 판단을 하지 못하면 점점 신뢰는 하락한다. 가족과 친구, 연인에게는 믿음을 주고, 동료와 거래처에게는 신뢰를 쌓자. 상황에 맞는 태도를 취해야 주어진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다. *3줄 요약 ◯믿음은 무조건적이고 본능적인 확신이며, 신뢰는 과거 행적에 기반한 이성적 판단이다. ◯가족에게 데이터를 요구하거나 직장에서 근거 없는 믿음을 주장하면 관계가 꼬인다. ◯가족과 친구에게는 믿음을, 동료와 거래처에게는 신뢰를 쌓아 나가자.
@1462 <한 쪽에 마음을 쓸수록 다른 쪽은 외면하게 된다> 1. “A 씨는 애인한테 톡을 하루 100통씩 보낸대요.” “그래요? 다른 사람들은 단톡방에서 대꾸도 잘 안 한다고 하던데요?” A는 사람들과의 연락에 진심인 사교적인 유형일까, 아니면 무뚝뚝하게 씹고 넘기는 나홀로족일까. 정반대처럼 보이는 이 두 가지 모습은 묘하게 서로 얽혀있다. 2. 우리 마음도 물리법칙처럼 작동하는 면이 있다. ‘에너지 보존법칙’을 본떠서 ‘마음씀씀이 총량의 법칙’이라고 불러본다. 즉 누구든 타인에게 마음을 쓰는 정신적 에너지의 전체 합은 일정하다는 의미다. 이 개념으로 해석하면 A의 행동이 쉽게 이해된다. 그는 애인에게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쏟느라 나머지 사람들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어진 상태다. 이런 현상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별한 일이 생겨 온 정성을 쏟게 되면 나머지 여러 관계와 업무는 소홀해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시간과 비용에 한계가 있듯 사람의 정신력도 사람마다 나름의 용량이 정해져 있다. 중요하게 챙겨야 할 일이 생긴다고 해서 남의 마음을 잠시 빌려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3. 그래서 정신상태에도 관리와 경영이 필요하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때는 휴대폰 전원을 끄고 서랍에 집어넣어야 한다. 그래야 총량이 유지된다. 공부할 거리가 산더미인데도 휴대폰 들여다보느라 마음을 엉뚱한 곳에 쓰면 어떻게 될까. 단순히 잃어버린 시간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만큼 내 정신력을 소모했으니 공부에 쓸 에너지가 그만큼 줄어든다. 이 내용을 넓혀보자. 당신은 지금 누군가에게 또는 어떤 아이템에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쏟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반대급부로 소홀하게 취급하는 부분은 없는가. 어떤 이유로 ‘집착’에 빠지면 자연스럽게 ‘외면’이 따라붙는다. 더 집착할수록 외면하는 대상도 늘어난다. 4. “그렇군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마음의 균형을 잘 잡아야겠어요.” No.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살다 보면 더 소중한 사람, 더 좋아하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자신의 에너지 총량을 어떻게 분배하면 좋을지 잘 따져보기만 하면 된다. A급은 A급대로, C급은 C급대로 필요한 만큼 관심을 기울이자. 가족은 매일 안부를 묻고 직장 동료는 일주일에 한 번 스몰토크를 나누어도 괜찮다. A급에 배정하고도 너무 빠져들어 집착하거나, C급인데도 최소한의 관심조차 주지 않고 방치한다면 포트폴리오 관리의 실패다. 다양한 인간관계, 여러 가지 활동들에 대해 자기 나름의 등급을 매겨보자. 그리고 각각 등급에 알맞은 대우를 하고 있는지도 스스로 평가해 보면 좋겠다. 5. 가족이나 절친처럼 A급으로 챙겨야 할 관계인데도 소홀하게 취급하는 경우가 있다. 남은 여력을 다른 곳에 돌려 쓰고 정작 중요한 그 사람은 막연히 방치한다. 그러다 뒤늦게 후회한다.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머무르며 활짝 꽃을 피울 줄 알았지만 물 안 주고 가꾸지 않으니 어느새 금방 시들어 버린다. 차갑게 식어버린 그의 무표정한 뒷모습에 ‘아차’ 싶지만 이미 늦었다. 있을 때 잘할 걸 그랬다. *3줄 요약 ◯정신 에너지는 총량이 정해져 있어서 한곳에 집중하면 다른 곳은 외면하기 쉽다. ◯기계적인 균형 대신 인간관계나 업무에 자신만의 등급을 매기고 그에 맞는 관심을 배분해 보자. ◯A급 관계를 방치하고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쓰면 나중에 꼭 후회할 일이 생긴다.
@1461 <화를 잘 내는 사람의 심리상태는 어떨까> 1. “팀장님은 왜 그렇게 툭하면 화를 내시는지 모르겠어요. 저 정도면 분노조절 장애 아닌가요.” 누가 무슨 말만 하면 톡 쏘아대며 욱하는 사람이 있다. 화를 폭발시키기 위해 누가 좀 건드려주길 바라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도대체 왜 그렇게 계속 화를 내는 걸까. 2. 심리학에서는 화를 ‘2차 감정’으로 본다. 기쁘거나 슬픈 마음처럼 따로 존재하는 마음이 아니라 다른 원인에 의해 유발되어 생긴다는 의미다. 배후에 숨어있는 진짜 원인은 두려움, 상처, 슬픔이다. 그런 심리가 바닥에 깔린 상태에서 특별한 사건이 터지면 금방 ‘화’로 불타오른다. 예를 들어보자. 누가 내 발을 밟으면 일단 많이 아프다. 너무 아프니 실수든 고의든 따질 겨를도 없이 눈물이 핑 돌 지경이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다. 어디까지나 고통스러운 감정이 먼저이고 ‘화’는 그다음이다. 만약 발을 살짝 밟혀 별로 아프지 않으면 화낼 일도 없다. 아픈 만큼 더 화도 많이 난다. 발을 밟힌 사람이 너무 아파 껑충껑충 뛸 정도인데도 사과받고 참으면 인격이 대단한 사람이다. 3. 김대리의 기획안에 화내는 팀장은 무슨 마음일까.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성과를 못 내면 다음 승진은 완전히 물 건너가는데.’ 두려움일 수 있다. ‘알려준 내용인데 같은 실수를 또 했네. 가뜩이나 와이프 하고 아이한테 무시당해서 기분 별로인데 회사에서도 내가 이런 대접을 받는구나.’ 슬픔일 수도 있다. 그렇게 나 혼자 괴로운 마음은 남에게 드러내기 어렵다. “김대리, 사실은 승진 누락될까 봐 무서워요.”, “김대리가 나 무시하나 싶어서 너무 슬퍼요.” 누가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 결국 ‘화’로 전환시켜 강하게 드러낸다. 약한 모습 드러내지 않고 센 척 보이기도 좋다. 결국 화는 내면의 약점을 덮어주고 숨겨주는 장치다. 4. 화가 많은 사람은 그만큼 지내온 시절이 평탄치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마음속 내면이 썩어 문드러진 상태이니 슬쩍 나뭇잎만 스쳐도 몹시 쓰라리고 아프다. 하지만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며 어쩔 수 없이 화를 낸다고 해서 남들이 알아봐 주겠거니 기대하면 안 된다. 오히려 화를 내면 낼수록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 발씩 뒤로 물러선다. “그럼 그렇게 불쌍한 사람이니까 무조건 참고 넘어가라는 말씀인가요? 제가 무슨 감정 쓰레기통인가요?” 아니다. 그 사람의 화를 정당화하자는 말이 아니라 그저 ‘납득’만 해보자는 의미다.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의식의 흐름을 이해해야 나름의 대책을 세울 수 있다. 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며 묵묵히 때리는 대로 계속 가만히 서서 맞고 있다면 자해에 가깝다. 5. 아무리 내면의 고통이 깊다고 한들 남에게 불필요하게 화내며 상처를 줄 권리는 없다. 이유 불문하고 폭언은 폭언이고 폭력은 폭력이다. 사람은 누구나 소중한 존재이지만 인간관계 기본 룰을 깨는 사람은 그만큼 덜 존중받아야 정의롭지 않을까 한다. 일단 선을 그어보고 정 안되면 관계를 끊는 각오가 필요할 수도 있다. 본인 스스로 반성하거나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이상 피해자가 아무리 이해하려 애를 써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3줄 요약 ◯화는 2차 감정으로 그 뒤에 두려움, 상처, 슬픔 같은 진짜 감정이 숨어 있다.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은 내면의 상처가 깊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상처 줄 권리는 없다.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되 필요하다면 관계를 정리하는 용기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