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검색 계정
인문서점 산책자(@sanchaekja) 인스타그램 상세 프로필 분석: 팔로워 3,245, 참여율 1.68%
@sanchaekja
비즈니스인문서점 산책자
•문의: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말과활아카데미 / word-bow@naver.com •말과활아카데미 @wordnbowacademy 와 함께합니다🌿
https://linktr.ee/wordnbow@sanchaekja님과 연관된 프로필
@sanchaekja 계정 통계 차트
게시물 타입 분포
시간대별 활동 분석 (최근 게시물 기준)
@sanchaekja 최근 게시물 상세 분석
여러 장 게시물 분석
@sanchaekja 최근 게시물
북클럽 [산책:자] <작가 탐구 4: 아베 코보(安倍公房)의 ‘실종 3부작’ 읽기> 온라인-오프라인 병행 일정: 6월 18일-7월 9일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참여신청: https://wp.me/pa0lZX-2IA 이번 작가 탐구 시간에는 아베 코보의 ‘실종 3부작’을 읽습니다. 아베 코보의 ‘실종 3부작’이란 1960년대에 출간된 그의 장편소설 세 권, 각각 『모래의 여자』(1962), 『타인의 얼굴』(1964), 『불타버린 지도』(1967)를 가리킵니다. 건축적이면서도 몽환적인 형태로 조직된 소설적 표류 공간, 버석버석하며 삭막하고 기이한 미로의 반(反)질서 속에서 아베 코보는 삶의 출구와 욕망의 실재, 자신의 정체성, 어스름한 안개 속에 가려진 타인의 그림자를 찾고 있는 인물의 혼란과 절망을 재현합니다. 허덕이는 갈증이나 권태 속에서, 일종의 단서처럼 내게 길을 인도하다가도 내가 통과하는 미로의 모퉁이에서 덧없이 무화되는 욕망의 기호들이 있습니다. 내 눈앞에 시시때때로 출현했다가 사라지는 이 불가사의한 기호들이야말로 삶의 비밀을 향해 나를 안내하는 수수께끼 같은 표지판이자 관능적인 암호, 진실의 파편일 텐데요. 아베 코보에 따르면 인간은 육체를 포식하는 구덩이가 여기저기에 잠복한 광대하고 뜨거운 사막(『모래의 여자』)에, 내 본래 얼굴을 지우는 사회적 가면들과 모호하면서도 으스스한 표정을 짓고 있는 타자의 가면들 사이(『타인의 얼굴』)에, 매혹적인 그림자들만을 힐끗 노출하는 가운데 무수히 교란되고 갈라지는 반듯한 도심의 질서 한가운데(『불타버린 지도』)에 포획된 무력한 탐정으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환상적인 공황 상태에 사로잡힌 아베 코보의 인물들은 대개 삭막한 공간을 배회하다가도, 어느 순간 발작적이고 공포스러운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삶의 공백을 채울 수 있는 뭔가를 필사적으로 찾는 자로 둔갑합니다. 하지만 인물이 찾는 그것은 늘 불확실함 속으로 물러납니다. 본래 소설에서 ‘찾기’는 인간의 눈을 가리는 베일 너머로 나아가려는, 삶의 진실이나 자신의 정체성, 해방과 탈출, 결정적인 욕망의 비밀을 거머쥘 수 있는 어떤 순간에 근접하려는 노력입니다. 그러나 아베 코보의 탐정들은 오히려 반대입니다. 찾으려는 자가 자신의 맹목적인 찾기 속에서 서서히 목적과 의미를 잃어버리고, 늘어나는 단서들 사이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스스로가 자신이 찾고 있었던 그 얼굴 없는 범인이자 무시무시한 타자였음을 확인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반짝이는 단서들이 빼곡하게 적혔던 칠판은 그 칠판이 덩그러니 배치되었던 바닥 없는 공허 속으로 익사합니다. 탐정은 자신이 초래한 것일지도 모를 착란적 미로 속으로 소멸하고, 찾으려는 자는 그가 발견하려 애썼던 바로 그 실종자가 되어 캄캄한 공백으로 변모한 자신과 마주합니다. 이른바 ‘추적의 자기 전도’라는 사태 말이죠. 제 생각에 아베 코보의 ‘실종 3부작’은 각각 현대문학이 다다른 실존의 막다른 궁지에 대한, 현대적 방황의 아포리아에 관한 가장 정확하며 불길한 우화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일상적 풍경 속이나 평평하고 넓게 펼쳐진 대지 위를 걷고 있음에도 종종 자신이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 속에 들어섰다고 느낍니다. 이 부조리한 미로의 정체란 대체 무엇일까요? 저는 아베 코보의 소설이 이러한 질문에 대한 매혹적인 대답을 제공할 것이리라 믿습니다: “도시ㅡ닫힌 무한. 결코 헤매는 일 없는 미로. 모든 구획에 똑같은 번지가 매겨진 너만의 지도. 때문에 너는 길을 잃더라도 해맬 수는 없다.”(『불타버린 지도』)
북클럽 [산책:자] <SF시는 미래를 꿈꾸는가> *온라인-오프라인 병행 일정: 5월 26일-6월 16일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참여신청: https://wp.me/pa0lZX-2Hd 마음껏 상상하고, 시공간을 거뜬히 건너뛰고, 이질적인 것을 접붙이고, 도약과 비약으로 타자에게 몸을 열고, 경계를 허물고 끝끝내 뒤섞여 존재를 확장해 질문에 부치는 것이 SF라면, 시는 이미 발생하는 순간부터 SF적인 요소를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가 태어난 순간 필연적으로 SF 역시 태어날 운명이었는지도. 때때로 지금 여기를 훌쩍 넘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경이로운 어떤 순간으로, 장소로 넘어가버린다는 점에서 시와 SF와 인간은 또한 닮은 구석이 있다. 그렇다면 ‘SF시’는, ‘SF시’라는 명명은 성립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얼마나 유효하며 유의미할까? SF시집이라 소개되고 널리 읽히며 사랑받는 시집들을 함께 읽고 세계관, 장르적 특성과 요소, 소재, 담론, 메시지, 발화방식 등을 두루 살펴본다. 어떤 시들을 읽을 때 우리가 ‘SF적’이라고 느끼며, ‘SF시’라고 굳이 분류하여 읽게 되는지, 때때로 지금 여기에 대한 가장 첨예하고 치열한 텍스트로 읽히기도 하는 바 SF시가 SF시로서 무엇을 어디까지 더 이야기할 수 있을지, 무엇까지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는지, 각자의 감상과 사유를 나누어본다. 나아가 무엇이 SF시의 고유한 특성이 될 수 있을지, 우리는 무엇을 시에, 특히 SF시에 기대하고 있는지, 시가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경계에서 함께 탐구하고 모색해보는 수업이다.
북클럽 [산책:자] <궤도를 벗어난 여자들> 실시간 온라인 강좌 6.17. - 7.8. 매주 수요일 오후 7:30 - 9:30 (4회) 참여신청: https://wp.me/pa0lZX-2Ie (프로필 링크트리) 우리는 매일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적인 삶’이라는 궤도를 유지하기 위해 애씁니다. 하지만 특정 계급과 소수자, 특히 여성들에게 그 궤도는 유독 좁고 엄격합니다. 이 독서 모임에서는 스스로 그 궤도 밖으로 미끄러지기를 선택했거나, 끝내 밀려나 버린 여성들의 기록을 읽습니다. 나를 억압하는 틀을 부수고 나가는 ‘파괴적 주체성’에 주목하며 우리 안에 억눌려온 내면의 비명과 진실을 함께 해부합니다. 독서 모임에서 나눌 질문들 불화의 기술-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인물들에게서 우리가 발견하는 ’해방감‘의 정체는 무엇인가? 번역되지 않는 고통- 사회적 언어(정상성)로 설명되지 않는 나의 감정이나 상태를 어떻게 이름 붙일 수 있는가? 문학적 태도- 나를 파괴하려는 세계 안에서, 나만의 ’궤도‘를 만드는 방식으로서의 읽기와 쓰기는 가능한가? 1회차(260617) 에우리피데스 『메데이아』 『메데이아』는 모든 이탈의 원형이자 ‘정상적 도덕’에 가하는 가장 거대한 타격입니다. 우리는 악녀라 불리는 메데이아를 통해, 세상의 질서와 개인의 진실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파멸적 에너지를 목격하게 됩니다. 2회차(260624) 레일라 슬리마니 『달콤한 노래』 돌봄 노동과 모성애라는 신성시되는 가치 뒤에 숨겨진 폭력성을 해부합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완벽한 돌봄을 수행하느라 정작 자신의 실존은 궤도 밖으로 밀려나 버린 한 여성의 살의를 통해, 현대 사회의 계급과 노동이 개인을 어떻게 궤도 밖으로 밀어내는지 그 현실적인 징후들을 포착해 봅니다. 3회차(260701) 마르그리트 뒤라스 『부영사』 목적지도, 정체성도 잃어버린 채 오직 ’존재함‘ 그 자체로 사회에 저항하는 정적인 이탈을 다룹니다. 뒤라스 특유의 여백이 많은 문장을 통해, 이름 없는 자들이 겪는 소외와 방황이 어떻게 하나의 미학이 되는지 경험합니다. 장소와 이름으로부터 유배당한 인물들을 통해, 우리가 사회적 관계를 모두 걷어냈을 때 남는 ’순수한 고독‘의 실체를 마주하게 됩니다. 4회차(260708) 바바라 몰리나르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몰리나르는 자신이 겪는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기존의 질서 정연한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느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평생 글을 썼지만, 자신의 진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문장들을 스스로 찢어버리며 침묵을 선택했습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설득으로 겨우 남겨진 이 파편화된 기록들을 통해, 나를 설명할 언어 체계가 완전히 무너진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날것의 비명’을 목격합니다. 일정: 6월 17일-7월 8일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30분 장소: 실시간 온라인(줌) 정원: 15명 참여비: 14만원 (말과활아카데미 CMS 회원, 북클럽 회원 112,000원) 문의: word-bow@naver.com / 카톡플러스 말과활아카데미
북클럽 [산책:자] <SF시는 미래를 꿈꾸는가> *온라인-오프라인 병행 일정: 5월 26일-6월 16일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참여신청: https://wp.me/pa0lZX-2Hd 마음껏 상상하고, 시공간을 거뜬히 건너뛰고, 이질적인 것을 접붙이고, 도약과 비약으로 타자에게 몸을 열고, 경계를 허물고 끝끝내 뒤섞여 존재를 확장해 질문에 부치는 것이 SF라면, 시는 이미 발생하는 순간부터 SF적인 요소를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가 태어난 순간 필연적으로 SF 역시 태어날 운명이었는지도. 때때로 지금 여기를 훌쩍 넘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경이로운 어떤 순간으로, 장소로 넘어가버린다는 점에서 시와 SF와 인간은 또한 닮은 구석이 있다. 그렇다면 ‘SF시’는, ‘SF시’라는 명명은 성립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얼마나 유효하며 유의미할까? SF시집이라 소개되고 널리 읽히며 사랑받는 시집들을 함께 읽고 세계관, 장르적 특성과 요소, 소재, 담론, 메시지, 발화방식 등을 두루 살펴본다. 어떤 시들을 읽을 때 우리가 ‘SF적’이라고 느끼며, ‘SF시’라고 굳이 분류하여 읽게 되는지, 때때로 지금 여기에 대한 가장 첨예하고 치열한 텍스트로 읽히기도 하는 바 SF시가 SF시로서 무엇을 어디까지 더 이야기할 수 있을지, 무엇까지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는지, 각자의 감상과 사유를 나누어본다. 나아가 무엇이 SF시의 고유한 특성이 될 수 있을지, 우리는 무엇을 시에, 특히 SF시에 기대하고 있는지, 시가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경계에서 함께 탐구하고 모색해보는 수업이다.
2026 서울형책방 [언어 여행자가 사랑한 영화: 4인의 번역가에게 듣는 문학과 영화 이야기] 일정: 6월 20일 / 6월 27일 / 7월 4일 / 7월 11일 오후 6시 (영화 미리 보기 오후 3시) 참여신청: https://wp.me/pa0lZX-2J6 서점의 세계문학 코너 앞에 서면 ‘번역가’를 떠올리게 된다. 번역은 지름길이 없이 시간에 갇히는 노동이라 번역가를 떠올리면 골방 한편의 책상을 떠올리기 쉽지만, 번역가는 책상에 붙들려 있으면서도 늘 시공간을 여행하는 사람이다. 시간을 거슬러 고전의 세계를 떠돌거나, 보통의 시선으로는 볼 수 없는 현대의 어두운 뒷골목을 탐문하거나 어떻든 그/그녀가 걸음을 멈추면 언어를 옮기는 그/그녀의 손도 멈출 것이다. 번역가가 텍스트 속으로 떠나는 여행의 비자는 언어일 테지만, 번역가야말로 매순간 언어와 언어 사이의 간극을 실감하며 현기증을 느끼며 곤혹을 견뎌야 할 것이다. 이 언어의 간극을 넘어 텍스트의 세계를 제대로 재현하기 위해 번역가는 무수히 다른 텍스트와 싸움을 벌인다. 이러한 노동을 하는 번역가에 대해 한국 사회는 모든 면에서 인색하거나 무지하다. 하지만 번역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를 한 번이라도 찾아가 보라. 언어의 간극을 건너기 위해 다른 시공간을 여행해 본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의 매력을 여러분은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서점 산책자는 그간 북클럽 활동을 해오면서 세계문학을 우리말로 전해준 번역가들의 지적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려 한다. ‘언어 여행자가 사랑한 영화―4인의 번역가에게 듣는 문학과 영화 이야기’ 기획이 그것이다. 내가 믿고 읽는 번역가는 어떤 영화를 사랑하고 또 내게 권할까. 문학과 영화라는 다른 두 텍스트를 연결하는 그/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실존과 삶과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는 단서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1회차. 비-시간의 보호구역으로서의 사랑 혹은 영화] with 김호영 일정: 6월 20일 토요일 오후 6시 (영화 미리보기 3시) 📚책: 장 피에르 다르덴·뤽 다르덴·미셸 시망, 『다르덴 형제―인간을 존중하는 리얼리즘』, 김호영 옮김, 마음산책, 2024 📽영화: <자전거 탄 소년>(2011) [2회차. 포토, 제니(génie), 사라지는 여자들] with 김예령 일정: 6월 27일 토요일 오후 6시 (영화 미리보기 3시) 📚책: 나탈리 레제, 『전시』, 김예령 옮김, 봄날의책, 2024. 📽영화: 바버라 로든, <완다>(1970) [3회차. 이마에 새겨진 십자 표시 지우기] with 서제인 일정: 7월 4일 토요일 오후 6시 (영화 미리보기 3시) 📚책: 마리아 투마킨,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 서제인 옮김, 을유문화사, 2023. 📽영화: 이시카와 케이 <한 남자>(2011) [4회차. 굴욕의 장소들] with 김정아 일정: 7월 11일 토요일 오후 6시 (영화 미리보기 3시) 📚책: 웨인 케스텐바움, 『굴욕』, 김정아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6 📽영화: 미즈타 노부오, <사죄의 왕>(2013)
개강 일정이 조정되었습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바랍니다 :) 북클럽 [산책:자] <SF시는 미래를 꿈꾸는가> *온라인-오프라인 병행 일정: 5월 26일-6월 16일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참여신청: https://wp.me/pa0lZX-2Hd 마음껏 상상하고, 시공간을 거뜬히 건너뛰고, 이질적인 것을 접붙이고, 도약과 비약으로 타자에게 몸을 열고, 경계를 허물고 끝끝내 뒤섞여 존재를 확장해 질문에 부치는 것이 SF라면, 시는 이미 발생하는 순간부터 SF적인 요소를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가 태어난 순간 필연적으로 SF 역시 태어날 운명이었는지도. 때때로 지금 여기를 훌쩍 넘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경이로운 어떤 순간으로, 장소로 넘어가 버린다는 점에서 시와 SF와 인간은 또한 닮은 구석이 있다. 그렇다면 ‘SF시’는, ‘SF시’라는 명명은 성립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얼마나 유효하며 유의미할까? SF시집이라 소개되고 널리 읽히며 사랑받는 시집들을 함께 읽고 세계관, 장르적 특성과 요소, 소재, 담론, 메시지, 발화 방식 등을 두루 살펴본다. 어떤 시들을 읽을 때 우리가 ‘SF적’이라고 느끼며, ‘SF시’라고 굳이 분류하여 읽게 되는지, 때때로 지금 여기에 대한 가장 첨예하고 치열한 텍스트로 읽히기도 하는 바 SF시가 SF시로서 무엇을 어디까지 더 이야기할 수 있을지, 무엇까지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는지, 각자의 감상과 사유를 나누어 본다. 나아가 무엇이 SF시의 고유한 특성이 될 수 있을지, 우리는 무엇을 시에, 특히 SF시에 기대하고 있는지, 시가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경계에서 함께 탐구하고 모색해 보는 수업이다.
북클럽 [산책:자] <SF시는 미래를 꿈꾸는가> 온라인-오프라인 병행 5.12. - 6.2. 매주 화요일 오후 7:30 - 9:30 (4회) 참여신청: https://wp.me/pa0lZX-2Hd (프로필 링크트리) 마음껏 상상하고, 시공간을 거뜬히 건너뛰고, 이질적인 것을 접붙이고, 도약과 비약으로 타자에게 몸을 열고, 경계를 허물고 끝끝내 뒤섞여 존재를 확장해 질문에 부치는 것이 SF라면, 시는 이미 발생하는 순간부터 SF적인 요소를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가 태어난 순간 필연적으로 SF 역시 태어날 운명이었는지도. 때때로 지금 여기를 훌쩍 넘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경이로운 어떤 순간으로, 장소로 넘어가 버린다는 점에서 시와 SF와 인간은 또한 닮은 구석이 있다. 그렇다면 ‘SF시’는, ‘SF시’라는 명명은 성립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얼마나 유효하며 유의미할까? SF시집이라 소개되고 널리 읽히며 사랑받는 시집들을 함께 읽고 세계관, 장르적 특성과 요소, 소재, 담론, 메시지, 발화 방식 등을 두루 살펴본다. 어떤 시들을 읽을 때 우리가 ‘SF적’이라고 느끼며, ‘SF시’라고 굳이 분류하여 읽게 되는지, 때때로 지금 여기에 대한 가장 첨예하고 치열한 텍스트로 읽히기도 하는 바 SF시가 SF시로서 무엇을 어디까지 더 이야기할 수 있을지, 무엇까지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는지, 각자의 감상과 사유를 나누어 본다. 나아가 무엇이 SF시의 고유한 특성이 될 수 있을지, 우리는 무엇을 시에, 특히 SF시에 기대하고 있는지, 시가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경계에서 함께 탐구하고 모색해 보는 수업이다. 1회차(260512) 『뭐 사랑도 있겠고, 인간 고유의 특성: SF시집』 허블, 2025 2회차(260519) 『엔딩과 랜딩』 이원석, 문학동네, 2022 3회차(260526) 『없어질 행성에서 씁니다』 신진용, 문학동네, 2025 4회차(260602) 다양한 시편들 (강사가 텍스트를 준비합니다) 일정: 5월 12일-6월 2일 매주 화요일 오후 7시 30분 장소: 말과활아카데미 (마포구 성지길 36, 3층), 실시간 온라인(줌) 정원: 12명 참여비: 14만원 (말과활아카데미 CMS 회원, 북클럽 회원 112,000원) 문의: word-bow@naver.com / 카톡플러스 말과활아카데미
북클럽 [산책:자] <나방의 시간─Woolf Unbound (1)> 실시간 온라인 강좌 5.21. - 6.11. 매주 목요일 오후 7:30 - 9:30 (4회) 참여신청: https://wp.me/pa0lZX-2HB (프로필 링크트리) 1941년, 버지니아 울프는 유리창에 몸을 던지는 나방 한 마리를 바라보며 글을 쓴다. 낮에 날아다니는 나방은 나방이라고 부르기에 적절치 않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 속에서, 울프는 그 나방의 몸이 마치 가늘고 순수한 어떤 섬유질 한 가닥처럼 작고 연약한, 그러나 세계의 거대한 에너지가 깃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세한 움직임과 죽음 직전의 격렬한 몸부림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응시하던 울프에게 최후로 날아드는 것은 나방이 남긴 외마디 외침이다. 아, 죽음은 나보다 강하구나! (“O yes, he seemed to say, death is stronger than I am.”) 세상에서 가장 짧으면서도 영원에 가까운 시간은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바로 그 찰나이고, 산문 「나방의 죽음」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바로 그 동시적인 순간의 지속을 기록한다. 강좌의 이름은 이로부터 왔다. 나방의 시간은 이 강좌에서 우리가 함께 경험할 응시의 시간이다. 중요한 것은 서사의 표면적인 종착지가 아니라 텍스트의 시간을 채우는 문장들, 그 언어가 ‘이곳’에서 무엇을 행하는지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는 시간 그 자체이며 울프의 세계는 바로 그 시선이 지나간 궤적으로부터 열리고, 솟아난다. 그리하여 강의의 부제 Woolf Unbound는 하나의 선언이자 우리가 함께할 읽기의 지향이 된다. 버지니아 울프는 누구인가? 그의 문학은 어떤 것인가? 가령,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에 등장하는 ‘서러운’ 울프는 과연 정말로 울프 자신인가? 모더니즘의 실험적 난해함과 페미니스트 아이콘이라는 조명등은 울프를 많은 독자와 만나게 했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문학을 빛 속에 가두었다. 이 강좌는 그 모든 사슬로부터 울프를 놓아주고자 한다. 함께 응시할 텍스트는 장편소설 『댈러웨이 부인』(1925)과 『올란도』(1929)다. 하루와 사백 년이라는 극소와 극대의 시간 속에서 울프가 그리는 삶과 죽음은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클라리사 댈러웨이가 파티를 준비하는 여름날 하루 안에는 전쟁, 죽지 못한 죽음, 이루지 못한 욕망, 그것들의 뒤엉킨 기억이 현재를 만들고, 시간의 조각은 과거와 미래로 찬란하게 틈입한다. 남자로 태어나 여자로 한 번 더 태어나는 올란도는 한 사람이 품을 수 있는 생의 부피, 그것의 거대함을 즐거운 역사적 상상력으로 내보인다. 울프의 소설은 플롯을 요약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경험될 수 없으며 ‘읽기’가 응시와 만짐으로, 나아가 독자 자신의 새로운 감각으로 체현될 때 비로소 읽히게 된다. 이 강좌는 세밀한 독해(close reading)를 경험하지 않은 이를 위해 설계되었다. 텍스트를 응시하기, 자신만의 시선으로 문장을 만지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던 이들을 위한 시간이다. 어려운 이론이나 작가에 대한 전기적인 정보가 없어도 괜찮다. 우리는 텍스트의 언어만을 붙들고 울프의 세계 안으로 들어간다. 1941년, 나방의 시간을 목격한 울프는 코트 주머니를 돌들로 채우고 우즈 강에 몸을 맡겼다. 나방은 창문에 몸을 던졌고 우리는 이제, 그 창문을 직접 열기로 한다. 1회차(260521)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정명희 옮김, 솔출판사, 2019. 2회차(260528)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정명희 옮김, 솔출판사, 2019. 3회차(260604) 『올랜도』 버지니아 울프, 박희진 옮김, 솔출판사, 2019. 4회차(260611) 『올랜도』 버지니아 울프, 박희진 옮김, 솔출판사, 2019. 일정: 5월 21일-6월 11일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30분 장소: 실시간 온라인(줌) 정원: 15명 참여비: 14만원 (말과활아카데미 CMS 회원, 북클럽 회원 112,000원) 문의: word-bow@naver.com / 카톡플러스 말과활아카데미
북클럽 [산책:자] <SF시는 미래를 꿈꾸는가> 오프라인 강좌 5.12. - 6.2. 매주 화요일 오후 7:30 - 9:30 (4회) 참여신청: https://wp.me/pa0lZX-2Hd (프로필 링크트리) 마음껏 상상하고, 시공간을 거뜬히 건너뛰고, 이질적인 것을 접붙이고, 도약과 비약으로 타자에게 몸을 열고, 경계를 허물고 끝끝내 뒤섞여 존재를 확장해 질문에 부치는 것이 SF라면, 시는 이미 발생하는 순간부터 SF적인 요소를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가 태어난 순간 필연적으로 SF 역시 태어날 운명이었는지도. 때때로 지금 여기를 훌쩍 넘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경이로운 어떤 순간으로, 장소로 넘어가 버린다는 점에서 시와 SF와 인간은 또한 닮은 구석이 있다. 그렇다면 ‘SF시’는, ‘SF시’라는 명명은 성립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얼마나 유효하며 유의미할까? SF시집이라 소개되고 널리 읽히며 사랑받는 시집들을 함께 읽고 세계관, 장르적 특성과 요소, 소재, 담론, 메시지, 발화 방식 등을 두루 살펴본다. 어떤 시들을 읽을 때 우리가 ‘SF적’이라고 느끼며, ‘SF시’라고 굳이 분류하여 읽게 되는지, 때때로 지금 여기에 대한 가장 첨예하고 치열한 텍스트로 읽히기도 하는 바 SF시가 SF시로서 무엇을 어디까지 더 이야기할 수 있을지, 무엇까지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는지, 각자의 감상과 사유를 나누어 본다. 나아가 무엇이 SF시의 고유한 특성이 될 수 있을지, 우리는 무엇을 시에, 특히 SF시에 기대하고 있는지, 시가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경계에서 함께 탐구하고 모색해 보는 수업이다. 1회차(260512) 『뭐, 사랑도 있겠고, 인간 고유의 특성: SF시집』 허블, 2025 2회차(260519) 『엔딩과 랜딩』 이원석, 문학동네, 2022 3회차(260526) 『없어질 행성에서 씁니다』 신진용, 문학동네, 2025 4회차(260602) 다양한 시편들 (강사가 텍스트를 준비합니다) 일정: 5월 12일-6월 2일 매주 화요일 오후 7시 30분 장소: 말과활아카데미 (마포구 성지길 36, 3층) 정원: 12명 참여비: 14만원 (말과활아카데미 CMS 회원, 북클럽 회원 112,000원) 문의: word-bow@naver.com / 카톡플러스 말과활아카데미
북클럽 [산책:자] <박솔뫼 읽기, 박솔뫼와 함께 읽기> 온라인-오프라인 병행 5.9. - 7.4. 매주 토요일 오후 3:30 - 5:30 (8회) 참여신청: https://wp.me/sa0lZX-10333 (프로필 링크트리) 박솔뫼를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박솔뫼 읽기는 누군가에겐 세상 모든 진지함을 과장되게 부정하는 냉소의 제스처이거나, 다른 누군가에겐 감각의 미세한 결을 끝까지 붙들며 따라가는, 지나치게 성실한 감응의 실천인 듯하다. 아니, 어쩌면 박솔뫼 읽기란 이처럼 누군가에게 자신의 ‘읽는 태도’를 은밀히 시험 받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그에 관해 무어라 떠들건, 박솔뫼의 소설은 언제나 멀뚱하고 덤덤한 얼굴로 제 갈 길을 가고, 제 할 말을 한다. 중요한 건 늘 그것뿐이라는 듯.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해야 할 말과 할 수 있는 말을, 그런 말의 잔여를 제때 정직하게 내어놓는 일 말이다. 이번 ‘박솔뫼 읽기’에서 우리는 박솔뫼의 소설을 ‘강하게’ 읽는다. 박솔뫼의 산뜻하지만은 않은 산책을 함께 하며 몸을 쓰고, 땀을 흘리고, 잠을 자고, 일어나 빵을 먹고, 커피를 마신다. 그 모든 과정에서 일어나는 아이러니한 마주침에 우리의 눈과 귀를 모조리 내어 주면서. 이는 의미와 무의미, 냉소와 저항, 역사성과 몰역사성, 몰입과 이탈 중 어느 하나로 박솔뫼의 텍스트를 환원하는 일과는 다르다. 그보다 그것은 이들의 경계를 소설과 더불어 소설의 표면으로 밀어붙이는 일에 가깝다. ‘박솔뫼 읽기’가 진행되는 4주간, 우리는 박솔뫼의 소설집 세 권과 한 권의 장편소설을 함께 읽는다. 이어질 ‘박솔뫼와 함께 읽기’에서는 작가가 옆에 두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과 함께 가리키는 문학의 기호들을 향해 일단 걸어가 본다. ‘하라 료’, ‘루시아 벌린’, ‘다카하시 겐이치로’, ‘로베르토 볼라뇨’의 이름을 무심하게 때로는 게걸스레 뒤적이며, 탐정과 비밀, 반복과 망각, 낮잠과 역사와 같은 어울리거나 어울리지 않는 낱말의 곁을 더듬어 본다. ‘박솔뫼 읽기’의 대장정이 끝나면, 이 모든 읽기가 끝내 무엇을 의미하거나 의미하지 않는지 섣불리 결정하지 않은 채로도 우리는 ‘박솔뫼’와 함께 광주를, 도쿄를, 부산과 후쿠시마를, 제주를 걷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1회차(260509) 박솔뫼, 『그럼 무얼 부르지』(자음과모음, 2014; 민음사, 2020) 2회차(260516) 박솔뫼, 『겨울의 눈빛』(문학과지성사, 2017) 3회차(260523) 박솔뫼, 『우리의 사람들』(창비, 2021) 4회차(260530) 박솔뫼, 『미래 산책 연습』(문학동네, 2021) 5회차(260613) 하라 료,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비채, 2018) 6회차(260620) 루시아 벌린, 『청소부 매뉴얼』(웅진지식하우스, 2019) 7회차(260627)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웅진지식하우스, 2017) 8회차(260704) 로베르토 볼라뇨, 『야만스러운 탐정들』1,2 (열린책들, 2012) <박솔뫼 읽기> 5.9. - 5.30. <박솔뫼와 함께 읽기> 6.13. - 7.4. 매주 토요일 오후 3:30 - 5:30 (6.6. 휴강) 장소: 말과활아카데미(마포구 성지길 36, 3층), 실시간 온라인(줌) 정원: 15명 수강료: 박솔뫼 읽기 140,000원 / 박솔뫼와 함께 읽기 140,000원 / 전체 수강 252,000원 (말과활아카데미 CMS회원, 북클럽 회원 20% 할인) 문의: word-bow@naver.com / 카톡플러스 말과활아카데미
북클럽 [산책:자] <풍차가 아닌 책과 싸우는 돈키호테: 『돈키호테 2』 읽기> 온라인-오프라인 병행 3.13. - 6.26. 매주 금요일 오후 7:30 - 9:30 (7회 + 8회) 참여신청: https://wp.me/pa0lZX-2Ev (프로필 링크트리) 10년의 기다림, 그리고 불청객의 도발 1605년 『돈키호테』 1권이 출간되어 유럽 전역에 돈키호테 열풍이 불어닥친 지 10년, 작가 세르반테스는 경제적 궁핍과 노환 속에서도 속편 집필에 매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614년에 '아베야네다'라는 필명의 작가가 세르반테스의 허락 없이 가짜 속편을 출간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문학적 침범은 세르반테스에게 커다란 모욕이었으나 동시에 신의 한 수가 되었습니다. 세르반테스는 이 위작을 무시하는 대신 2권의 서사 안으로 끌어들여 진짜가 가짜를 심판하는 기막힌 복수극을 설계합니다. 이는 저작권 개념이 희미하던 시대에 작가가 캐릭터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벌인 우아한 투쟁입니다. 소설 속 돈키호테는 자신을 사칭한 가짜의 존재를 알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또 자신이 진짜 돈키호테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까요? 2권의 돈키호테가 싸우는 대상 중의 하나는 바로 책입니다. ‘만차 Mancha’, 지울 수 없는 얼룩 소설의 배경인 ‘라 만차’는 단순한 지명을 넘어선 은유입니다. 스페인어로 ‘만차’는 ‘얼룩’을 뜻하며, 이는 당시 스페인을 지배하던 ‘혈통의 순수성’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풍자입니다. 우리는 『돈키호테』 1권에서 이 주제가 혈통뿐 아니라 종교와 여성 문제와 관련해 반복해서 다루어지는 모습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또한 돈키호테의 이름과 행동을 통해 그가 주류 사회에서 배척받는 얼룩진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읽어내기도 했습니다. 세르반테스는 ‘발견된 원고’라는 기사 소설의 상투적인 기법을 활용해 사라진 이야기를 사라진 역사와 중첩시킵니다. 아랍인 작가의 원고를 모리스코(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슬람교도) 번역가가 옮기고 기독교인 편집자가 정리한다는 복잡한 계보. 이는 기록자에 따라 이야기가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이자 여러 겹의 가면을 통해 지워진 역사의 흔적을 픽션에 박제하려는 섬세한 전략이기도 합니다. 『돈키호테』 1권과 2권 사이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인 1609년 모리스코 추방은 소설에 어떤 얼룩을 남겼을까요? 자신이 살던 땅에서 쫓겨난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현실을 삼켜버린 픽션, 전복된 세계 『돈키호테』 1권과 2권의 가장 큰 차이는 환상을 만드는 주체에 있습니다. 1권에서는 돈키호테가 스스로 현실을 픽션으로 왜곡했다면, 2권에서는 다른 이들이 돈키호테에게 픽션을 강요합니다. 물론 1권에서도 돈키호테의 적대적 조력자인 신부라는 인물을 통해 돈키호테의 픽션과 주변 세계의 픽션이 충돌하는 모습이 묘사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2권에서는 『돈키호테』 1권을 책으로 읽은 독자들이 소설의 인물들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돈키호테를 조롱하기 위해 정교한 가짜 기사도 세계를 현실에 구축합니다. 이제 돈키호테는 자신의 광기가 아니라 타인이 설계한 픽션의 덫에 갇혀버린 수동적인 존재로 변합니다. 전복된 현실과 픽션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돈키호테를 보며 우리가 사는 현실은 사실 타인이 쓴 픽션이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현실이라는 것 자체가 픽션처럼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후 댓글로) 시즌 1 3.13. - 4.24. 시즌 2 5.8. - 6.26. 매주 금요일 저녁 7:30 - 9:30 장소: 말과활아카데미(마포구 성지길 36, 3층), 실시간 온라인(줌) 정원: 15명 수강료: 시즌 1 210,000원, 시즌 2 240,000원, 전체 수강 405,000원 (말과활아카데미 CMS회원, 북클럽 회원 20% 할인) 문의: word-bow@naver.com / 카톡플러스 @말과활아카데미
북클럽 [산책:자] <작가 탐구 3: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 읽기> 온라인-오프라인 병행 3.12. - 4.2. 매주 목요일 오후 7:30 - 9:30 (4회) 참여신청: https://wp.me/pa0lZX-2DP (프로필 링크트리) 포크너는 미국을 대표하는 모더니즘 작가로 명성이 높습니다.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하는 알레고리적 연옥인 ‘요크나파토파’의 창조자이기도 하지요. 얼마나 많은 세대의 작가와 독자가 포크너를 통과해야만 했을까요? 그러나 유명세와 무관하게, 그의 소설들은 세대마다 적잖은 베일에 가려진 채로 독자에게 배달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빌어 말씀드리면, 포크너를 읽었던 체험은 제가 지금껏 읽었던 작품들 가운데서도 특히나 가장 경이로운 일들 가운데 하나였어요. 이십 대 초반에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병실에 누워 그의 소설인 『팔월의 빛』을 읽으며 저는 온몸의 신경이 눈부시게 불타는 것 같은 괴이한 축복의 시간을 통과해야만 했으니까요. 저는 포크너를 시간과 상속의 관점에서 읽습니다. 제 생각에 포크너 소설에서 주요한 주제는 대지와 공동체를 상속하는 문제이며, 상속의 실패와 함께 피와 치욕으로 흥건하게 젖은 유산이 인간에게 야기하는 거듭된 트러블일 것입니다. 이는 미국 남부의 역사성과 영욕으로 가득한 신화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죄와 부채에 짓눌릴 수밖에 없는 아들과 딸, 인디오와 흑인들, 폐허에 깃든 유령들의 생존과 관련됩니다. 그래서 포크너 소설의 아들들은 대개 파멸하거나 자살할 수밖에 없고, 포크너 소설의 딸들은 주변적 공간에 암약하며 위협적인 과거를 전파하는 미친 노인들이 되어 있습니다. 포크너 소설의 특이성은 유럽 모더니즘 전통과 깊게 관련되지만, 이러한 ‘아버지-시간’의 붕괴에 대응하고 이를 애도하며 상이한 시간성의 물줄기를 내는 일, 공동체의 몰락과 함께 추악하지만 결코 외면하거나 단절하지 못할 공동체적 시간을 총체적으로 긍정하기 위한 문학적 전략의 문제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야생 종려나무』의 마지막에서 포크너는 이렇게 씁니다: 만일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기억이 존재할 수 없으리라. 슬픔과 무 중에서 고르라면 나는 슬픔을 택할 것이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이곳에 존재하게 하며, 무와 슬픔 가운데 슬픔을 택하는 일로부터 『압살롬, 압살롬!』의 퀜틴은 소리칩니다: 나는 남부를 증오하지 않아. 나는 남부를 증오하지 않아! 이번 시간에는 포크너의 여러 대표작을 폭넓게 살펴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1회차(260312) 딸과 아들, 노예 장부와 공동체 「헛간 타오르다」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 송이 장미」 『곰』의 4장 2회차(260319) 조각나는 시간과 증식하는 화자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3회차(260326) 벤지의 고함과 퀜틴의 시계, 제이슨의 하품 『소리와 분노』 4회차(260402) 나는 남부를 증오하지 않아. 나는 남부를 증오하지 않아! 『압살롬, 압살롬!』 일정: 3월 12일-4월 2일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30분 장소: 말과활아카데미 (마포구 성지길 36, 3층), 실시간 온라인(줌) 정원: 15명 참여비: 14만원 (말과활아카데미 CMS 회원, 북클럽 회원 112,000원) 문의: word-bow@naver.com / 카톡플러스 말과활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