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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sting 모서리 라디오는 스테이지를 함께한 아티스트들의 신인 음악 생활을 나눠 청년 음악인에게 영감을 주고자 기획한 콘텐츠입니다. 누구나 처음은 어렵고 막막하지만 그 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설렘과 도전 정신을 오프라인과 OPCD 유튜브 라이브로 나누려 합니다. 라디오 부스에 10명 남짓 들어가면 꽉 차니 아티스트의 생생한 신인 생활을 함께하고 싶은 분은 시간표를 확인해 주세요! 모서리 라디오에는 스테이지에 선 아티스트와 OPCD Friends 뿐 아니라 요즘 떠오르는 매거진 대표자들이 함께합니다. 음악 창작자와 다른 시선에서 이들을 관찰해 온 매거진 대표자들은 음악 취향도 각기 다르고 보고 듣는 것도 다르지만 음악의 엄청난 팬이라는 점은 너나 할 것 없이 같습니다. 음악인을 인터뷰하던 이들의 숨은 이야기가 궁금한 음악 팬들의 방문도 기다립니다. 장소는 창동역 1번 출구 고가 밑 OPCD 레코즈 청음실. LP 음악 감상실 옆입니다. 주소는 ‘도봉구 마들로 11길 71-1’입니다. DND 매거진은 16 : 40 부터 17 : 20 까지 아티스트 주혜린, 김규린님과 함께합니다. 27일, 부스 안에서만 들을 수 있는 그녀들의 가장 솔직한 신인 시절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𝟮𝟬𝟮𝟱 OPCD Stage: Discovery ➜ Date: 2025.09.27(SAT) ➜ Venue: 도봉구 창동 1-29 (창동역 1번 출구 좌측) 발견, 모서리를 찾아서 Discovery, Finding the Edge!

#DNDEDITORIAL #INTERVIEW #DIRECTING 셔츠보이프랭크의 프론트맨 안덕근과 나눈 인터뷰는, 음악과 현실 사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시간을 고백하는 자리였습니다. 그 대화 속에서 저희는 결국 어린 시절의 “시네마 천국”을 회상하게 되었죠. 『The Era of Company Man』은 41분의 귀로 감상하는 영화입니다. 〈장고〉, 〈아비정전〉, 〈킹콩〉, 〈이창〉, 〈왓치맨〉, 〈바빌론〉, 〈Her〉, 〈어른 제국의 역습〉. 각 트랙은 하나의 장면이고, 프레임과 조명, 리듬과 무드로 연기됩니다. 마지막 트랙에서는 모든 악기가 퇴장하며 자기 이름을 밝히고, 테이프는 멈춥니다. 그 연장은 뮤직비디오로 이어졌습니다. 앨범의 4번 트랙 〈My Dear Natural Disaster〉의 MV는 끝내 음악과 예술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지만 맞히지 못하는 한 남자의 고백을 담았습니다. 정체불명의 저택, 알 수 없는 여인의 춤, 샹들리에 사이로 스며드는 무형의 존재. 현실과 환각의 경계가 흐려지고, 결국 관객조차 어느 쪽이 진실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됩니다. DND는 이번 뮤직비디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했습니다. 인터뷰와 뮤직비디오, 그리고 그 속의 한 장면. 지금, 그들의 영화 같은 여정을 인터뷰와 MV의 키컷까지 함께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PHOTO - Vincentia Yang Shirts Boy Frank - My Dear Natural Disaster Artist_ Shirts Boy Frank Director_ Vincentia Yang CD_ WonTaek Oh (Editor - in - Chief) PD_ Shinyoung Kim AD_ Sangho Park, Eunseo Park Starring_ Deokgeun Ahn, Heeju Kim DOP_ Woorim Ji, Dowon Ahn 1st Ac_ Sunghyuk Han Gaffer_ Dowon Ahn H&M_ Minju Baek Styling_ Hongjun Kim Art_ Vincentia Yang Dancer Team _Minju Song (Main) _Dahye Lee _Rijin Kim _Heewon Na _Yebin Jang DI _ Squarecolor Edit_Vincentia Yang

3톤짜리 전자음 실험 기계가 있었습니다. 대학 연구실 한쪽을 차지하던 신시사이저는 작곡가들이 전자음을 수학처럼 계산하고, 테이프를 잘라 붙이는 데에만 쓰이던 연구 도구였습니다. 처음엔 누구도 그것을 ‘악기’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전자음은 연구실을 넘어 뮤지션의 손에 들어왔습니다. 당시에는 무겁고 사용법이 매우 복잡했지만, 직접 만지며 원하는 소리를 만들 수 있었고, 그 소리는 곧 차트와 공연장을 뒤흔들었습니다. 낯설지만 매혹적인 전자음이 대중의 음악 언어로 자리를 잡은 순간이었죠. 신사사이저의 확장은 예상치 못한 곳까지 이어졌습니다. 70년대에는 식물을 위한 앨범 모트 가슨의 플란타시아가 등장하며 전자음은 거실 속 화분에게까지 건네졌는데요. 여담으로, 젊은 시절의 한스 짐머는 그 거대한 장비 앞에서 사진으로 남았고, 수십 년 뒤 다시 같은 장비를 꺼내 블록버스터 사운드의 트렌드를 만들어냈습니다. 실험실의 전자음은 결국 스크린을 울리는 거대한 사운드로 변모했죠. 오늘날의 신시사이저는 더 이상 방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작은 장치와 소프트웨어만으로도 수천 가지 소리를 만들 수 있으며, 침실과 무대, 스튜디오를 자유롭게 오갑니다. Daft Punk, James Blake, Tame Impala 같은 아티스트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사운드는 그 흐름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연구실의 거대한 기계에서 시작된 전자음은, 이제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음악 문화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Editor / Taek

1976년, 로이 에이어스는 햇살을 음악으로 남겼습니다. 〈Everybody Loves the Sunshine〉은 단순히 음악에 계절을 투영한 것이 아닌, 도시의 공기와 여름의 무드를 사운드로 담아낸 작업이었죠. 비브라폰과 전자 키보드가 만든 긴 여운은 그 순간을 하나의 풍경처럼 정착시켰습니다. 이 곡은 곧 세대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어떤 시절에는 따뜻한 위로로, 또 다른 시절에는 현실을 비추는 은유로 쓰였습니다. 잘려 나간 단편은 새로운 맥락에서 이어지며 다른 얼굴을 얻었고, 매번 다른 시대의 목소리 속에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로이 에이어스는 단순한 연주자가 아니라 시대의 증언자로 남았습니다. 그는 오늘날 음악 역사상 가장 많이 샘플링된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기록되며, 〈Everybody Loves the Sunshine〉은 수많은 장르와 세대를 거쳐 반복적으로 불려졌는데요. 그들의 샘플링은 단순한 차용이 아니라, 시간을 다시 엮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곡은 여전히 현재형입니다. 세대를 건너 불려왔고, 지금도 같은 온도를 남기고 있습니다. 그 흔적은 샘플링으로 재해석된 대표적인 음악들 속에서도 선명하게 이어집니다. Editor / Taek

2005년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sunburnkids, 첫 아트북과 함께 1.7KG 26SS 전시를 엽니다. 14세에 학교를 떠나 창작에 몰두해온 그는, 어린 나이에도 올데이 프로젝트,유태오, 니키 리 등의 프로젝트를 이끌며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해온 디렉터입니다. 현재는 1.7KG의 디렉터로, 첫 아트북 발간과 더불어 새로운 컬렉션 전시를 선보입니다. 이번 전시는 그의 할머니에게서 출발했습니다. 작품 곳곳에 남겨진 실제 할머니들의 바느질은 작은 스티치마다 외로움과 애정을 동시에 담아내며 ‘보이지 않는 사랑의 언어’로 이어집니다. 이는 26SS 컬렉션의 중심이자, 이번 전시가 전하려는 메시지입니다. “이번 작업을 통해 우리 곁에서 조용히 사랑을 건네는 존재들을 다시 발견하길 바랍니다.” – @sunburnkids 전시 정보 ● 기간: 2025.09.21 – 09.30 ● 시간: 11AM – 8PM ● 장소: workingwithfriend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 162) @sunburnkids · @1.7kggggg · @workingwithfriend

“Mid 90s : Beautiful because it’s not perfect” 90년대의 햇빛 가득한 캘리포니아 거리에서 시작하는 영화 Mid 90s는 단순한 성장 영화가 아니라, 한 시대의 공기와 감각을 생생히 붙잡아낸 시적 기록입니다. 조나 힐의 연출 데뷔작인 이 영화는 낡은 VHS 화면 같은 질감으로, 무심하지만 잊을 수 없는 소년들의 여름을 관객의 눈앞에 펼쳐 보입니다. 미장센은 이 작품의 가장 강렬한 무기입니다. 좁은 방, 오래된 가구, 삐걱대는 보드, 햇살이 스며드는 길거리 등, 모든 장면은 90년대 중반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합니다. 넓지 않은 화면비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작은 제스처와 주변의 디테일이 도드라지며, 마치 오래된 홈비디오를 훔쳐보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스토리는 열세 살 소년 스티비가 스케이트보드 소년 무리에 섞여가며 겪는 성장의 단편들을 따라갑니다. 폭력, 우정, 가족 간의 긴장 같은 일상적인 사건들이 특별한 기승전결 없이 흘러가지만, 바로 그 자연스러움이 삶의 진실을 담아냅니다. 작은 순간들이 쌓여 결국 스티비의 내면을 바꾸는 힘이 되는 것이지요. 음악 또한 이 영화의 서사를 직조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90년대 힙합과 펑크록, 그리고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가 만든 미니멀한 사운드트랙은 영상과 절묘하게 맞물려, 스티비의 불안정한 감정을 대변합니다. 이 음악들은 시대적 배경을 넘어서, 관객의 감정 깊숙이 파고드는 보편적 울림을 전합니다. 결국 Mid90s는 어제의 시간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향수의 영화가 아니라, 젊음의 불완전함과 아름다움을 그 순간 그대로 붙잡아낸 작품입니다. 그것은 마치 스케이트보드의 흔들림처럼 불안정하면서도, 그 안에서만 빛나는 자유와 가능성을 강렬하게 새겨 남깁니다. Editor / MIYU

누자베스는 재즈와 힙합을 이어내며 새로운 감각을 만든 아티스트였습니다. 샘플링과 비트 위에 남긴 따뜻한 톤, Shing02와 함께한 협업은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인 힙합의 흐름 속에서도 뚜렷하게 자리했습니다. 최근에는 밴드 OMA가 그의 곡들로 투어를 진행하며, 그 영향력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죠. 그가 운영하던 Guinness Records는 단순한 레코드 샵이 아니었습니다. 우다가와초 골목의 작은 공간은 희귀한 재즈와 소울, 언더그라운드 힙합이 모여드는 장소였고, 직접 수입한 음반들은 그의 취향을 증명하는 서명과도 같았죠. 좁은 진열대와 창가의 빛이 어우러진 매장 안에는, 당시 도쿄에서만 경험할 수 있었던 공기가 있었습니다. 가격은 합리적이었습니다. 같은 수입 음반이라도 다른 곳보다 낮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고, 이는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음악에 다가가도록 만들었습니다. 누자베스가 남긴 태도는 음반의 큐레이션뿐 아니라, 음악을 향한 배려에서도 드러났습니다. Guinness Records는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여전히 하나의 증거로 남아 있습니다. 영수증과 봉투, 사진으로 확인되는 그 공간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누자베스가 음악과 사람을 연결하던 방식의 기록입니다. Editor / Taek

AOR과 소프트 록의 온도를 다시 꺼내는 Rude Jude는 Alone On Records 시리즈로 자신의 감각을 보여줍니다. 재즈와 팝, 디스코까지 섞이며 트랙들은 매번 다른 무드를 띱니다. 오래된 곡들을 그대로 두지 않고, 지금의 귀로 들리도록 다시 엮어내죠. 한 곡이 끝날 때쯤이면 단순한 플레이리스트가 아니라 작은 공연을 본 듯한 기분이 남습니다. 그의 무대는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Dabeull의 투어와 음악에도 함께하며, 펑크와 소울의 결에 AOR의 선율을 더했습니다. Dabeull은 에디터가 매거진에서 여러 차례 소개해온 프랑스 펑크 아티스트이기도 한데요.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뿌리를 가졌지만, 같은 레트로 지향 속에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왔습니다. Rude Jude의 작업은 언제나 이 지점으로 모입니다. 레거시를 이어가는 일, 주류 음악과는 거리가 먼 프로젝트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사랑해온 음악을 지금의 방식으로 다시 들려주는 것. 그래서 더 설득력 있고,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Rude Jude의 Alone On Records는 그의 유튜브 채널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ditor / Taek

까데호는 음악을 ‘말’ 대신 ‘대화’라고 표현합니다. 셋이 동시에 말하고 동시에 듣는 구조. 그 안에서 곡은 쓰이지 않고, 태어납니다. 이번 [ENDLESS]는 그 대화에 ‘루프’라는 제약을 더했지만, 그 안에서 오히려 감정의 탈출구를 찾습니다. 퍼즈톤 솔로가 반복을 뚫고 나온 순간, 그들은 “아름다운 깽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라이브는 그날의 조도, 거리, 온도에 따라 곡의 흐름도 매번 다르게 흘러갑니다. 셋리스트는 고정된 순서가 아닌, 그날의 감각에 반응하는 방향성에 가깝습니다. 소리를 먼저 꺼내놓고, 공간이 그 소리에 반응할 수 있도록 두는 것. 그게 지금까지의 까데호가 공연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얽히고 풀리는 감정의 실타래 안에서, 까데호는 여전히 줄타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지금, 그들이 말하는 ‘진짜 대화’의 순간들을 DND와 함께한 인터뷰에서 함께 따라가보시길 바랍니다. PHOTO - @vincentiayang , @cadejo___

“Fur coat : Reflect the times and gestures” 퍼 코트는 단순한 의복을 넘어, 시대와 태도를 감싸는 상징이었습니다. 무겁고 드라마틱한 그 실루엣은 곧 권력과 자유, 그리고 한 시대의 정신을 선언하는 장치가 되었죠. 누군가의 어깨에 걸린 순간, 퍼는 그 사람의 존재감 자체를 증폭시키며 거리 위를 하나의 무대로 바꿔놓았습니다. 1940~50년대 재즈 클럽에서 퍼 코트는 리듬과 비트처럼 흔들렸습니다. 황홀한 브라스의 울림 속에서, 퍼는 예술가들의 저항과 세련된 자존심을 드러내는 도구였죠. 그것은 음악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틀을 거스르며, 자유와 스타일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주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퍼는 점점 더 대중적인 욕망과 엘리트적 상징을 동시에 품게 됩니다. 1960년대 이후 퍼 코트는 은밀히 럭셔리의 대명사가 되었고, 영화와 무대에서 화려한 드라마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시기의 퍼는 단순히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강렬한 자기 선언에 가까웠습니다. 1970~90년대에 이르러 퍼 코트는 블랙 문화 속에서 또 다른 목소리를 가졌습니다. 소울과 펑크, 디스코의 불꽃 같은 에너지 속에서, 퍼는 고급스러움과 거리의 저항성을 동시에 품었습니다. 특히 힙합이 태동하던 시기, 퍼 코트는 억눌린 현실 속에서도 화려하게 빛나고자 했던 문화적 선언이자 정체성의 갑옷이었습니다. 2000년대 이후 힙합과 스트리트 씬에서 퍼는 다시금 부활했습니다. 무대 위 래퍼들의 과장된 제스처와 함께 퍼 코트는 권력과 스타일의 아이콘으로 재해석되었죠. 과거의 향수를 넘어 오늘날 퍼 코트는 여전히 과장과 자유, 그리고 저항을 담은 시각적 선언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외투가 아니라, 시대와 몸짓을 동시에 입는 가장 대담한 문장이었습니다. Editor / MIYU

1921년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 토리노에서 태어난 피에로 피치오니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아버지 아틸리오 피치오니는 그를 자주 ELAR 스튜디오에서 열리는 콘서트에 데려가며 음악적 경험을 쌓게 했고, 정식 음악 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어린 시절의 경험은 평생 동안 그에게 큰 영감을 주었죠. 1938년, 당시 17세였던 피에로 피치오니는 013 빅 밴드와 함께 라디오 무대에 데뷔하였지만, 1944년 이탈리아 해방 이후에야 방송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밴드는 파시즘이 몰락한 이탈리아에서 방송된 최초의 이탈리아 재즈 밴드였습니다. 1950년대, 변호사로서 로마에서 영화 배급사인 티타누스와 드 로렌티스의 영화 판권을 확보하는 일을 하던 중 영화계와 인연을 맺게 된 피치오니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견습생 루이지 폴리도로 감독의 다큐멘터리 음악 작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영화 음악 작곡가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1952년 장편영화 <Il Mondo le Condanna>에 첫 영화 음악을 맡아 변호사라는 직업을 지휘봉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후 약 50년에 걸쳐 300곡 이상의 사운드트랙과 오케스트라 곡을 작곡하며 왕성하게 활동하였습니다 피에로 피치오니는 20세기 클래식 작곡가들과 미국 영화 음악, 그리고 어린 시절 즐겨 들었던 재즈에 큰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였습니다. 그의 음악은 부드럽고 세련된 멜로디와 풍성한 현악, 보사노바와 재즈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며, 이로 인해 ‘라운지 음악의 대부’라는 별칭을 얻으며 이탈리아 영화음악의 전설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그의 낭만적인 음악은 깊은 감성과 풍부한 표현력으로 청자에게 따뜻한 위로와 여운을 남기며, 서정적인 멜로디가 주는 고유한 우아함과 정교한 화성 진행을 통해 감정의 섬세한 결까지 포착해냅니다. 이러한 그의 음악적 특징은 <Amore mio aiutami>, <Easy Lovers>라는 곡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피치오니의 작품은 사랑, 갈등, 희망 등 인간 내면의 다양한 감정을 음악을 통해 사실적이면서도 시적으로 풀어내어, 듣는 이로 하여금 음악 안에 담긴 이야기와 감정에 몰입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낭만적 음악성 덕분에 그의 영화음악은 오늘날의 청자들의 마음에까지 깊이 닿고 있습니다. 수많은 명감독, 특히 프란체스코 로시, 루키노 비스콘티,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등에게 러브콜을 받은 그는 대중적인 조명이 다소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화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깊은 존경과 찬사를 받으며 시대를 초월한 거장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Editor / Hyun

패션의 역사는 때로, 길거리의 날것 같은 정신이 정제된 우아함으로 변주되는 순간들로 기록됩니다. 1998년, 보그 이탈리아 12월호에 실린 화보 ‘Let’s Rock’은 바로 그러한 변곡점에 서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사진가 스티븐 마이젤의 주도 아래, 음악 장르 ‘그런지(Grunge)’가 지닌 에너지를 하이 패션의 정제된 무대 위로 끌어올린 작업이었습니다. 이 화보는 1990년대의 시대적 흐름을 정밀하게 포착했습니다. 1998년은 너바나(Nirvana), 펄 잼(Pearl Jam) 같은 밴드가 주도했던 그런지 문화가 절정에 이른 시기였습니다. 어두운 클럽에서 시작된 거칠고 반체제적인 미학은, 이미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흡수되어 재해석되고 있었습니다. 디자이너들은 자유로운 레이어링, 의도적으로 해진 텍스처, 젠더의 경계를 허무는 실루엣과 같은 그런지의 아이덴티티를 오뜨 꾸뛰르의 문법 속에 녹여냈습니다. 원래는 안티패션의 외침이었던 요소들이 하나의 패션 장르로 변모하는 순간이었습니다. ‘Let’s Rock’은 바로 그 미학적 전환을 생생하게 시각화했습니다. 낡아 보이도록 한 디테일, 성별의 경계를 지우는 스타일링, 빈티지 피스와 현대적 디자인의 대담한 결합은 록에서 영감을 받은 아이덴티티를 완성했습니다. “패션은 옷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삶에 관한 것 (Fashion isn’t really about clothes, it’s about life)” — 당시 편집장이었던 프란카 소자니의 말처럼, 이 프로젝트는 그저 옷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응축된 반항정신과 자유로움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냈습니다. ‘Let’s Rock’은 1990년대 말, 하이 패션이 거리의 시대정신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세련된 럭셔리의 언어로 해석되었지만, 그 패션 속에서 여전히 맥동하던 것은 본래의 자유와 저항의 리듬이었습니다. Editor / a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