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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훈 Alan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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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벡, 라프로익, 라가불린 같은 아일래이 위스키를 좋아하는 이들은 짭조름한 피트 향에 익숙하다. 바닷바람, 요오드, 타르, 모닥불 연기. 하지만 오래 마신 사람은 이 섬의 진짜 매력은 연기의 강도가 아니라, 그 뒤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풍경에 있다고 생각한다. Ardbeg 8 Years Old “For Discussion”은 뜻밖의 아일래이다. 여덟 해라는 나이에 비해 이 위스키는 조급하지 않다. 어린 청년처럼 힘으로 자신을 증명하기보다, 오히려 질문을 던진다. 아드벡은 정말 스모키만으로 완성되는 위스키인가. 이름 그대로, 이 병은 대화를 청한다. 이 미묘한 위스키 한 잔과 함께 블로그에 글을 쓴다. 생각. 타이핑. 한 모금. 회상. 다시 타이핑. 그리고 반복. 잔을 코 가까이 대면 피트보다 바다가 먼저 온다. 해초와 젖은 암석, 막 껍질을 벗긴 굴의 짠 향, 훈제 연어를 올린 검은 빵. 그 뒤로 레몬과 라임이 희미하게 스치고, 한 박자 늦게 익숙한 아드벡의 스모크가 등장한다. 주연 배우가 늦게 무대에 올라오는데도, 이미 극은 충분히 흥미로운 것처럼. 버번 캐스크의 아드벡이 직선적이라면, 이 위스키는 셰리 캐스크를 통해 조금 다른 대화를 시도한다. 짭조름한 피트는 어느 순간 솔티드 캐러멜로 번지고, 계피 같은 향신료를 지나 은은한 단맛으로 이어진다. 스모크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앞장서기보다, 다른 향들을 위해 한 걸음 물러난다. 젊은 위스키답지 않게 예의바르고 성숙하다. 아드벡은 오래전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Committee라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들이 팔아온 것은 위스키만이 아니라, 한 병 앞에 두고 무엇이 느껴지는가를 이야기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For Discussion’이라는 이름은 그래서 적절하다. 정답보다 대화를 남기는 위스키. 시간이 갈수록 분명해지는 취향이 있다. 더 강한 자극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고, 더 긴 여운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파민과 자극, 목표의 달성, 외향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큰 로고보다 잘 만든 버튼 하나를 오래 바라보고, 비싼 와인보다 함께 마신 사람을 기억하며, 강한 피트보다 연기 뒤에 숨어 있던 바다 냄새를 사랑하는 내향적인 사람들도 있다. 이 위스키는 후자의 느낌이다. 아직 젊은 나이에도 서두르지 않고, 형제들과는 다른 태도를 보여준다. 위스키에게도, 사람에게도 그것은 드문 미덕이다. #ardbeg #ardbeg8fordiscussion #singlemaltwhisky #위스키 #아드벡
패션은 미래를 말한다. 다음 시즌, 다음 실루엣, 다음 소비자. 그러나 어떤 럭셔리 하우스는 미래가 새롭게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축적된 기준 위에 세워진다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샤넬의 Charvet 인수는 지금 럭셔리 산업이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준다. 소비자는 럭셔리를 가방, 향수, 로고로 기억한다. 하지만 럭셔리가 파는 것은 제품만이 아니다. 기술이고, 기준이고, 끝내는 시간이다. 손의 감각, 몸에 대한 이해, 원단을 다루는 태도, 그리고 무엇이 우아한가를 판별하는 안목. 진짜 럭셔리는 그 보이지 않는 시간을 물성으로 바꾸는 산업이다. 1838년에 시작된 Charvet는 세계 최초의 전문 셔츠 메종이다. 두 세기에 걸쳐 셔츠와 타이, 파자마, 로브를 만들어왔고, 그들이 축적한 것은 몸을 읽는 법과 색의 미세한 차이를 구별하는 감각, 그리고 6,000종의 셔팅 원단 아카이브 같은 미학의 저장고다. 샤넬의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매튜 블라지는 데뷔 컬렉션에서 Charvet와 함께 셔츠를 만들었다. 그 셔츠는 그가 샤넬에서 말하고 싶은 언어를 보여줬다. 화려함보다 구조, 효과보다 균형, 이미지보다 복식의 본질. 그런 디자이너에게 완벽한 셔츠는 주변부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오랫동안 럭셔리 산업은 로고와 가격 인상, 시장 확장 속에서 쉽게 성장했다. 하지만 이제 소비자의 질문은 달라졌다. 누가 더 유명한가보다, 누가 더 정확하게 만드는가. 왜 이 가격이어야 하는지, 왜 이 브랜드여야 하는지, 왜 이 옷이 오래 남을 수 있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시대다. 그래서 샤넬의 Charvet 인수는 셔츠 브랜드 하나를 더한 일이 아니다. 앞으로의 럭셔리가 받게 될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미리 한 것이다. 더 많은 판매를 위한 인수가 아니라, 더 오래 살아남을 기준을 지키기 위한 인수. 더 큰 로고가 아니라, 더 깊은 복식을 위한 선택. 코코 샤넬의 연인이자 뮤즈였던 Boy Capel은 Charvet의 단골 고객이었다. 코코 샤넬이 사랑했던 남성적 복식의 태도, 셔츠와 자켓에서 시작되는 권위, 몸을 조이지 않고 오히려 해방시키는 맞춤의 감각이 다시 샤넬의 언어로 호출될 느낌. 돈으로 브랜드를 사는 일은 흔하다. 그러나 돈으로 시간을 사고, 그 시간을 보존하는 일은 드물다. 나는 그것이 진짜 럭셔리라고 생각한다. 과거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하우스는 미래를 가질 자격이 있다. #charvet #chanel #샤르베 #샤넬 #luxury
나폴리나 풀리아의 클래식 수트가 몸을 정돈하는 옷이라면, Dior Men의 수트는 사람에게 새로운 해석을 입히는 옷이다. 여기선 잘 맞는다는 기준이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얼마나 의도적으로 어긋나 있는지가 창의성의 척도가 된다. 자켓은 전통적 수트보다 허리 억제가 덜하고, 어깨는 과장 없이 구조적이며, 버튼 위치는 낮아 상체의 긴장을 풀어준다. 그 결과 실루엣은 권위적이기보다 무심하고, 엄격하기보다 우아하게 느슨하다. 수트 안에서 하나의 캐릭터가 생겨나는 것이다. 나는 로버트 패틴슨, 특히 배트맨의 그를 좋아한다. 다른 브루스 웨인들과 달리 완벽한 중심에 서기보다, 중심에서 반 발짝 비켜 선 사람처럼 보인다. 정직한 미남이라기보다 그림자가 먼저 도착하는 얼굴. 그래서 런던 <오디세이> 시사회에서의 이 수트가 좋았다. 정답처럼 입지 않은 옷이었기 때문이다. 그레이 수트, 화이트 셔츠, 블랙 타이라는 보수적인 어휘를 쓰면서도, 자켓 길이와 팬츠의 여유, 구두 위에 머무는 바지의 브레이크, 가늘고 단정한 넥타이의 수직선이 전체를 전혀 다르게 읽히게 만들었다. 수트의 목적이 다른 것이다. 몸의 구조를 정교하게 반영하며 예절과 품위를 드러내는 수트가 있는가 하면, 분위기와 캐릭터를 표현하는 수트도 있다. 전자가 정확함이라면, 후자는 개성이다. 완벽한 비례와 계산된 무심함의 차이. 디자이너 수트를 입는다고 클래식 수트의 교양을 버리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교양을 충분히 이해한 뒤, 어디에서 힘을 빼야 하는지 아는 고급 기술이다. 패틴슨의 룩에서도 넥타이는 얇고 길게 떨어지지만 과장되지 않고, 라펠의 Dior 표식과 타이의 CD 로고는 브랜드를 드러내기보다 낮은 톤으로 속삭인다. 중요한 것은 로고가 아니라 리듬이다. 이게 구찌와 다른 점이다. 디자이너 수트는 로고를 입는 옷이 아니라, 브랜드의 리듬을 입는 옷이다. 옷이 앞에 나서지 않고 인물의 분위기를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길게 끌고 갈 때 비로소 멋이 생긴다. 이 수트는 역할을 하되 그 안에 여백을 남겨둔다. 조금 긴 바지, 덜 조여진 허리, 날 세우지 않은 어깨, 설명하지 않는 검은 구두. 그것들은 “나는 규칙을 모른다”는 표지가 아니라 “나는 규칙을 알지만 오늘은 이렇게 입겠다”는 선언이다. 로버트 패틴슨의 룩은 배트맨의 우울, 월드 스타의 세련, 소년 같은 무심함, 하우스의 정교함이 한 벌 안에서 충돌하지 않고 공존했다. 멋진 디자이너 수트는 그 사람의 모순마저 품위 있게 품고 있었다. #suit #robertpattinson #diormen #수트 #menswear
우리나라 도시는 우리가 사랑하던 장소를 너무 쉽게 지운다. 건물은 철거되고, 골목은 넓어지고, 지도는 더 효율적으로 바뀐다. 하지만 기억은 재개발되지 않는다. 우리가 한 장소를 기억하는 이유는 벽돌이나 간판이 아니라, 그 안에서 흘렀던 시간 때문이다. 보광동의 헬카페도 그랬다. 헬카페에선 꽃과 커피 향과 함께 음악을 느낀다. 오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와 소울, 그리고 LP가 돌아가는 미세한 잡음. 그 소리는 “여기는 이런 곳입니다”라고 말한다. 헬카페는 오래전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던 곳이다. 원두를 볶는 기술에 더해 무엇을 들려줄 것인가, 어떤 컵을 사용할 것인가, 공간에 어떤 공기를 남길 것인가를 고민하는 카페. 그래서 헬카페는 유행을 따라가지 않았다. 오히려 유행이 몇 번이나 지나가는 동안 자기 속도를 지켰다. 서울에서는 살아남는 것 자체가 재능이다.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보광동 다음, 대흥동에 다시 헬카페 로스터즈가 문을 열었다. 이전의 복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새 헬카페 로스터즈는 더 넓고, 더 정돈되었고, 더 성숙해졌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았다. 나무 선반 위에 무심하게 놓인 컵들, 음악을 중심으로 설계된 스피커, 바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하는 구조, 전혀 다른 차원의 두 사장. 취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천 잔의 커피를 내리고, 수만 장의 음반을 듣고,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는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생긴다. 그것은 자본보다 느리지만 훨씬 오래간다. 헬카페는 서울이라는 도시에도 아직은 속도보다 깊이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증거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는 여전히 새로운 골목을 찾아 걷고, 낯선 문을 열어본다. 지금처럼 계속 좋은 음악을 틀고, 맛있게 원두를 볶고, 꽃을 준비하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공간으로 오래 남기를 바란다. 헬카페의 건투를 빈다. 서울 마포구 독막로 281. #헬카페 #헬카페로스터즈 #coffee #Seoul
새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두 가지를 기대한다. 놀라움 혹은 재회. 놀라움은 미래를 향한다. 재회는 과거를 향한다. 마돈나의 새 앨범 <Confessions II>는 두가지를 같이 준다. 아, 우린 이렇게 고급스러운 댄스 뮤직을 듣고 살았었지 하는 기분. 2005년 <Confessions on a Dance Floor>는 클럽을 가장 현대적인 장소로 만들었다. 이번에는 같은 공간을 가장 사적인 장소로 바꾸어 놓았다. 마치 클럽이 상처를 치유하고 자유를 얻는 종교적 공간인 것처럼. 이번 앨범은 <Confessions on a Dance Floor>를 함께 만들었던 프로듀서 스튜어트 프라이스(Stuart Price)와 다시 손을 잡고, 전작과 동일하게 모든 트랙이 끊김 없이 흐르는 논스톱 DJ 믹스 체제를 가져왔다. 20년이 지났는데 음악이 더 귀에 감긴다. 그녀의 낮고 따뜻하며 솔직한 본연의 보컬 레지스터가 돌아왔다. 이십년전 이태원의 클럽에 있던 생각이 날 정도로. 반짝이는 하우스 비트 아래에는 시간의 흔적이 있다. 젊은 날의 성공과 실패, 가족을 잃은 상실, 나이 들어가는 몸, 그리고 여전히 창작을 멈추지 않는 의지. 리듬은 앞으로 달려가지만 마음은 계속 뒤를 돌아본다. 즐거운 비트에 가사는 진지하다. 댄스 뮤직인데 회고록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중성. 오늘날의 팝은 늘 새로움을 증명하려 애쓴다. 하지만 마돈나는 오래된 사운드 위에 지금의 자신을 올려놓는다. 마돈나는 이 앨범으로 젊음을 되찾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시간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 음악은 복고가 아니라 진화고 숙성이다.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의 한 전형. PS. 미돈나는 67세다. 한국 공연은 어떻게 안되나요. 그리고 우리나라의 김완선씨도 할수 있어요. #madonna #newalbum #ConfessionsII #마돈나
인사이트 가득한 멘토들의 생각을 곁에 두고, 그들의 생각을 배울 수 있는 기회. 구독형 콘텐츠 플랫폼 멘토폴리오가 런칭했습니다. 실제 비즈니스 최전선에서 전문성을 검증받은 현직자들이 직접 글을 쓰는 것이 특징입니다. 저도 멘토폴리오 지식 구독 플랫폼에 인문/문화 부문 멘토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서 자유롭게 표현한 이야기들을 조금 더 정제해서, 그리고 시기와 트렌드에 맞게 새로운 주제들을 구상해서 인사이트 담은 칼럼을 멘토폴리오에 쓰고자 합니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되시는 분들의 구독을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지금 구독하시면 30% 할인 프로모션도 있답니다. 6월 26일부터 7월 16일까지. 멘토폴리오에 접속하셔서 마이페이지에서 쿠폰코드를 등록하시면 됩니다. 쿠폰코드는 알란최고. 글을 쓰는 건 제 삶과 생활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작업입니다. 앞으로도 패션, 스타일, 남성복, 이탈리아, 일본, 복장 문화에 대한 글을 또 열심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https://m.site.naver.com/2aRze #멘토폴리오
이제 곧 장마라고 한다. 아직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이미 맑은 날을 아쉬워한다. 인간은 원래 할 수 없게 될 일을 갈망한다. 비가 오면 입을 수 없는 것들. 화이트 바지. 가죽 구두. 리넨 자켓. 그리고 베이지 수트. 베이지 수트는 옷장 속에서 오래 기다리는 옷이다. 겨울에는 추워서, 한여름에는 더워서, 비 오는 날에는 아까워서 미뤄진다. 그렇게 계절적인 옷이 가장 입을 기회를 잃는다.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베이지나 아이보리 수트는 특별한 날 입는 혹은 성격 독특한 사람이나 입는 옷처럼 기억된다. 지난주까지 있던 이탈리아의 거리와는 풍경이 아예 다르다. 그래도 밝은 컬러의 수트를 좋아한다. 베이지 수트를 입을 때 흔한 실수는 너무 꾸미려는 것이다. 화려한 넥타이, 강한 대비의 셔츠, 과한 액세서리는 이 옷이 가진 장점을 지워버린다. 심플하게 접근해야 한다. 하얀 셔츠, 브라운 니트 타이나 레지멘털 타이 하나, 리넨 포켓스퀘어, 그리고 브라운 스웨이드 로퍼. 조금 더 클래식하게 가고 싶다면 브라운과 아이보리의 스펙테이터 슈즈. 이 조합은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다. 베이지는 자신감의 색이 아니다. 취향의 색이다. 자신감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취향은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옷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 베이지 수트를 입으면 발걸음이 조금 느려진다.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는 시간도 길어진다. 트라토리아에서 봉골레를 주문하면서 와인 리스트를 한 번쯤 더 넘겨보게 된다. 좋은 옷은 행동을 바꾸고, 행동은 하루의 리듬을 바꾼다. 장마가 끝나면 베이지 수트를 하나 맞춰야겠다. 어깨는 부드럽게, 실루엣은 너무 슬림하지 않게. 리넨이 조금 섞여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러운 주름이 남는 원단이면 더 좋겠다. 그리고 그 수트를 입고 손종원 쉐프 식당에 가겠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이면, 그 색을 떠올린다. 이제 진짜 여름이 다가오는구나 하면서 #beige #suit #menswear #summer #beforetherain
남성복 시장은 지금 냉정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한 시대를 대표하던 멀티브랜드 스토어들이 문을 닫고, 소비는 신중해졌으며, 브랜드들은 예전보다 훨씬 적은 확신 속에서 다음 시즌을 준비한다. 이탈리아 남성복 시장 역시 성장보다 방어에 신경쓴다. 그럼에도 110회를 맞은 피티 워모에는 700개가 넘는 브랜드가 모였고, 절반 가까이는 해외 브랜드였다. 시장은 위축됐지만, 기회를 찾는 사람들의 비행편은 아직 취소되지 않았다. 포르테차 다 바소의 풍경은 여전하다. 네이비 수트와 빈티지 밀리터리 재킷이 공존하고, 자켓을 아예 생략한 사람도 많다. 브랜드와 제품을 찾는 사람들과 회의적 시각으로 둘러보는 이들. 열심히 옷 자랑하는 공작새들이 여전히 있다. 다만 누가 더 화려한가가보다 누가 더 오래 살아남을가다. 사진은 금방 지나가지만, 제품은 남는다. 지금의 피티 워모는 이상보다 현실에서 움직인다. 시대 흐름을 반영한 자켓, 균형 좋은 니트, 시즌을 넘어갈 수 있는 트라우저, 진화하는 셔츠. 시장이 흔들릴수록 소비는 결국 기본으로 돌아간다. 브랜드의 경쟁력도 이미지보다 제품에서 드러난다. 좋은 원단, 정확한 패턴, 안정적인 생산, 납득 가능한 가격. 결국 늘 비슷한 이야기 같지만, 그 같은 이야기가 제일 어렵다. 시절이 어려울수록 통제할 수 없는 걸 걱정하기보다,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기업이나 환율은 통제할 수 없다. 경기도, 소비자의 심리도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어떤 브랜드를 만날지, 어떤 제품을 선택할지, 누구와 이야기할지는 통제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브랜드를 본다. 원단을 만져본다. 가격을 계산한다. 공장을 방문할 스케줄을 잡는다. 가능성을 적는다. 시장이 어려울 때도 새로운 브랜드를 발견하고, 매력 있는 제품을 고르고, 기회를 계획으로 바꾸는 역할. 피렌체의 여름 저녁은 천천히 내려온다. 아르노 강 위로 빛이 길게 번지고, 두오모의 붉은 돔은 저녁 속에서 더 또렷해진다. 그 시간에 하루를 정리한다. 오늘 본 브랜드와 사람, 이어가야 할 미팅, 다시 계산해야 할 숫자와 문서들. 해야 할 일은 아직 많고, 공부해야 할 것도 많다. 유행보다 중요한 것은 가능성이고, 이미지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나는 다음 피티에도 다시 올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기위해 #pittiuomo #pittiuomo110 #피티워모 #menswear #남성복
이탈리아에서 구두는 그저 신발이 아니다.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약간의 허영까지 동시에 드러내는 물건이다. 조금 과장하면, 구두는 이탈리아 남자들의 이력서다. 다만 말없이 제출될 뿐이다. 오래전 처음 Pitti Uomo에 갔을 때 나는 당황했다. 사람들은 수트보다 먼저 구두를 봤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을 위에서 아래로 보지 않았다. 아래에서 위로 읽었다. 피렌체의 어느 골목, 멋진 구두를 신은 남자 셋이 서 있었다. 한 명은 Edward Green, 한 명은 Magnanni, 마지막은 조용히 Enzo Bonafé. 겉으론 평온했지만, 평가는 이미 끝나 있었다. “그린이네. 묵직하고.” “맥나니네. 약간 프렌치하군.” “보나페. 역시 부드럽다.” 이건 브랜드를 보는 일이 아니다. 촉감과 시간, 취향과 인생을 동시에 읽는 방식이다. 이탈리아에서 구두에 대한 질투는 수트보다 조금 덜 노골적이다. 대신 교묘하고 오래 간다. 누군가의 구두를 보고 “잘 관리하셨네요”라고 말할 때, 그 안에는 늘 복합적인 감정이 들어 있다. 나는 저 정도까진 못 한다. 그런데, 조금 부럽다. 피렌체의 어느 쇼룸에서 완벽하게 에이징된 구두를 본 적이 있다. 색은 깊게 가라앉고, 주름은 자연스럽고, 광택은 애쓴 티 없이 조용했다. “얼마나 신으셨어요?” 내가 묻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한 7년?” 그 순간 알았다. 저건 단순한 7년이 아니라, 7년 동안 매일 신경 쓴 집착이라는 걸. 이 세계에서 선망은 좀처럼 “멋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늘 질문의 형태로 나온다. “어디서 사셨어요?” “크림 뭐 쓰세요?” “라스트 뭐예요?” 뜻은 결국 같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죠. 구두 앞에서 이탈리아 남자들은 유난히 섬세해진다. 새것보다 잘 에이징된 것을 좋아하고, 그 숙성의 과정을 직접 키운다. 거의 반려동물처럼. 누군가 새 구두를 신고 나타나면 반응은 짧다. “오, 새 거네.”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이런 뜻이 숨어 있다. 이제 시작이네. 관리 못 하면 금방 티 난다. 우리는 보고 있다. 좋은 구두를 신는다는 건 결국 시간을 신는 일이다. 더 비싼 구두도, 더 유명한 브랜드도 있었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건 가장 자기 것이 된 구두였다. 그래서 클래식을 좋아하는 남자들에게 구두는 단순한 신발이 아니다. 그것은 걸어온 시간에 대한,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관리할 자신감에 대한, 아주 조용하고도 집요한 자랑이다. #shoes #menswear #madeinitaly #구두 #피렌체
피렌체는 화려함으로 사람을 압도하기보다, 오래 남는 것으로 우리를 설득한다. 로마가 제국의 기억, 베네치아가 물의 환상이라면, 피렌체는 인간이 세상을 더 잘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의 표정이다. 거리의 돌바닥과 수도원의 회랑, 성당의 둥근 천장이 모두 아름다움이 사치가 아니라 삶의 일부라 말한다. 그런 피렌체의 본심에 조금 더 가까이 가고 싶어 아침 일찍 산마르코 수도원 미술관을 찾았다. 낮 1:50이면 닫는 이곳은 메디치 가문의 후원 아래 지어진 도미니코회 수도원 안에 자리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Fra Angelico의 작품을 품고 있다. 무엇보다 보고 싶었던 작품은 <수태고지> 수도사들의 방으로 이어지는 계단 끝에서 마주한 이 프레스코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예수의 잉태를 알리는 순간을 담고 있다. 이 그림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놀라운 사건 자체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다룬다. 천사는 몸을 낮추고, 마리아는 놀라기보다 자신의 내면으로 조용히 물러난다. 설명하기 어려운 고요함과 품위. 이 그림 앞에선 르네상스를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르네상스를 인간의 자신감이 커진 시대라고 말하지만, 산마르코에서 느낀 르네상스는 오히려 겸손이었다. 인간은 자신의 힘을 드러낼 때만 진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 큰 의미 앞에서 자세를 바로 할 때도 성장한다.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에는 화려한 극적 장면보다 맑은 질서와 부드러운 빛이 있다. 그 빛은 번쩍이지 않고 조용히 비춘다. 성 마가, 감람산의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오래된 성가 필사본까지, 산마르코의 모든 작품은 하나의 태도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름다움을 통해 인간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시대 정신. <수태고지> 앞에 오래 서서 생각했다. 삶은 물질과 성취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질문과 응답으로도 만들어진다. 내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보다, 내 앞에 도착한 것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일 것인가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자세, 계속 배우려는 마음, 아름다움을 향한 추구. 오래전 르네상스의 벽화 한 점이 오늘을 살아가는 방식을 가르쳐준다. 그게 피렌체의 매력 #museodisanmarco #산마르코미술관 #프라안젤리코 #수태고지 #Firenze
피렌체에 오면 늘 가는 식당 Cantinetta Antinori. 여러 나라 여행을 해왔지만, 새로운 장소를 찾기 보다 같은 장소를 다시 찾는다. 좀더 젊었을 때는 미지의 장소에 대한 설레임이 있었다. 지금은 반대다. 식당의 문을 열었을 때 들리는 “Bentornato(돌아왔군요)“라는 인사가 더 큰 기쁨이 된다. 철들고 스무해 가까이 피렌체를 오갈 때마다 찾는 이곳은 내 클래식 복장의 스승인 Franco Minucci 선생이 데려가주셨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부터 나는 공간에 매료되었다. 지금보단 스페이스가 훨씬 적었지만 짙은 월넛 우드, 세월을 머금은 가죽 의자, 벽을 가득 채운 와인병들, 절제된 조명이 다 좋았다. 모든 것이 화려하지 않은데 품격이 있었다. 비싼 것을 자랑하지 않고, 오랜 시간 쌓인 취향을 보여주는 공간. 나는 좋은 식당과 좋은 복장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과시보다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에서. 시간이 만든 아름다움을 존중하는 자세도. 그리고 둘 다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 Cantinetta Antinori는 그런 장소다. 안티노리 가문은 600년 넘게 와인을 만들었다. 이탈리아 와인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그들이 운영하는 식당답게 와인 리스트는 그 자체로 하나의 교양이다. 서울에서 마시면 적지 않은 가격이 되는 티냐넬로나 솔라이아, 다양한 토스카나 와인들을 이곳에서는 훨씬 부담 없는 가격으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와인 자체보다 와인을 대하는 태도다. 이곳 사람들은 와인을 시간을 함께 마신다. 점심에 한 병을 주문하고 두세 시간 동안 천천히 식사를 이어간다. 급하게 잔을 비우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는다. 누구도 빨리 일어나야 한다는 압박이 없다. 서울의 점심은 늘 효율적이야했다. 빠르게 필요한 걸 해치우고 다시 복귀하는 일상. 하지만 피렌체의 점심은 다정하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 오면 일부러 시간을 비워둔다. 휴대폰도 덜 본다. 메일도 미룬다. 대신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창밖을 바라본다. 사람들을 본다. 이 식당에는 관광객보다 피렌체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서 멸종하고 있는, 잘 재단된 재킷을 입은 신사들. 은은한 향수를 남기고 지나가는 노부인들이 자리를 채운다. 과하게 꾸미지 않았지만 우아한 사람들. 나는 부러운 마음으로 그들을 본다. 이탈리아에서 스타일은 옷만이 아니다. 삶의 태도다. 어떻게 걷는지. 어떻게 앉는지. 어떻게 사람을 대하는지. 어떻게 점심을 먹는지. 그 모든 것이 스타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옷보다 사람을 더 많이 배웠다. 와인보다 시간을 더 많이 배웠다. 음식보다 삶을 더 많이 배웠다. 그동안의 중요한 생각들은 피렌체에서 떠올랐다. 새로운 브랜드를 시작하는 상상. 내가 잘 할 수 있는 옷을 만드는 계획.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 나이가 들어가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피렌체에서의 점심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작은 회의실이 된다. 혼자 참석하는 회의. 그리고 그 회의의 안건은 늘 미래다. 2026년 6월. 나는 지금도 이곳에 앉아 있다. 테이블 위에는 토스카나 와인이 놓여 있고, 창밖에는 피렌체의 햇살이 내려앉아 있다. 조금 덥지만 자켓을 벗지 않는다. 무언가를 존중하는 마음가짐. 익숙한 매니저는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있다. 식당은 예전보다 훨씬 더 유명해졌고, 안티노리는 다른 도시로도 확장했다. 그리고 세상은 많이 변했다. 하지만 다행히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좋아한다. 오래된 재킷. 오래된 친구. 오래된 식당. 와인. 그리고 오랜 시간 반복해서 찾아도 여전히 설레는 장소. Cantinetta Antinori는 내게 레스토랑이 아니다. 피렌체라는 도시가 가진 품격을 가장 아름답게 압축해 놓은 한 장의 사진이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그 사진 속에 앉아 있다. 와인을 천천히 마시며.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며. 아주 긴 점심을 즐기면서 #CantinettaAntinori #firenze #italy #ristorante
데이비드 호크니가 세상을 떠났다. 여든여덟. 그러나 그는 여전히 색으로 남고, 태도로 남고, 우리가 세계를 이래하는 방식 속에 잔류한다. 1960년대 팝아트의 장면 속에서 등장했지만, 그 이후 육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회화와 사진, 무대미술과 디지털 드로잉을 자유롭게 오가며 자기 언어를 멈추지 않고 확장해왔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작가를 좋아했다. 옷을 만들거나 바잉하다보면 어떤 순간들은 그를 경유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었다. 특정 작품을 차용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내게 중요했던 건 이미지가 아니라 태도였다. 색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장식으로만 남기지 않는 감각, 평면을 다루면서도 공간의 체온을 잃지 않는 시선, 사적인 취향을 공적인 언어로 끌어올리는 대담함. 패션은 색을 포인트로 쓴다. 하지만 호크니의 색은 포인트가 아니라 구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핑크는 사랑스럽게 소비되지 않고, 그의 블루는 청량감에 머물지 않는다. 그린은 자연이라기보다 선언처럼 놓이고, 옐로우는 빛의 효과를 넘어 화면 전체의 온도를 지배한다. 그래서 나 역시 컬렉션의 색을 고를 때, 예쁜가보다 이 색이 공간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침묵을 만들 것인가 소음을 만들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호크니는 경쾌함을 가볍게 두지 않는 법을 알았다. 화면은 밝고 선명하며 때로 유쾌하지만, 조금도 얕아지지 않는다. 그 밑에 드로잉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선이 살아 있고, 구성이 버티고 있다. 프린트가 강하고 컬러가 대담해도, 결국 옷을 지탱하는 것은 패턴과 재단인 것처럼 호크니는 색채의 거장이기 전에 구조를 이해한 사람이었다. 많은 예술가들이 성공의 이미지를 반복하며 자기 신화를 관리한다. 하지만 호크니는 그 바깥으로 나갔다. 사진을 탐닉했고, 무대미술로 확장했으며, 아이패드같은 디지털 드로잉까지 기꺼이 받아들였다. 새로운 도구를 쓴다는 것은 기술 하나를 더 익히는 일이 아니다. 자기 손의 습관을 의심하고, 익숙한 우아함을 버리고, 다시 초보가 되는 일이다. 창작자에게 위험은 실패가 아니라, 잘된 시절 안에서 영원히 안전해지는 것이다. 호크니는 끝내 안전해지지 않았다. 영원히 배워가는 그 용기가 나는 아름다웠다. 그의 초상들. 사람이 자기 옷을 입고, 자기 자세를 취하고, 자기 침묵 안에 머무는 순간을 정확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좋은 옷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옷은 사람을 가리기보다 드러내야 한다. 다만 잔인하지 않게, 그 사람의 리듬과 체온을 존중하면서. 호크니의 인물화에는 그런 예의가 있다. 관찰의 예의, 거리의 예의, 사랑을 요란하게 말하지 않으면서도 분명히 사랑하고 있는 눈의 예의. 창작자에게 가장 깊은 영향은 ‘영향받았다’는 문장으로 남지 않는다. 어느 순간 그것은 자기 언어 안으로 흡수되어 설명되지 않아도 되는 감각이 된다. 비율을 조금 더 밀어야 할 때, 컬러 밸런스를 끝까지 붙들어야 할 때, 프린트를 덜어내는 편이 더 세련되다는 것을 직감할 때, 그는 이미 거기 있다. 조용히. 그러나 unmistakably. RIP, David. #DavidHockney #R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