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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그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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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도 항상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원하는 꿈으로 조금 더 도약하는 한 해 되시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속도를 조금 늦춘 채로도 계절은 곁으로 다시 돌아오고, 우리가 남겨 둔 한 줄의 여백은 언젠가 너를 환하게 데우는 문장이 될 거야.' - 2026, 널그
택시
며칠 사이 날이 춥습니다. 모두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라요.
가끔 생각한다. 혀끝에서 사라진 문장들은 지금 어디쯤 떠다니고 있을까. 차마 소리 내지 못한 것들이 공기 중에 흩어져 나를 감싸고 있는 건 아닐까. 삼킨 말보다 건넨 말이 더 따뜻했던 건, 그 사이의 시간이 사랑이었기 때문일까. 오늘도 묻는다. 괜찮냐고. 그 단순한 글자 속에 네가 접어 넣은 마음을 나는 펼쳐본다. 모서리 없는 목소리가 내 안의 날선 것들을 하나씩 어루만진다. 그렇게 서로의 무게를 견디는 법을 배워간다. 말하지 않은 것들로.
한 달쯤 됐을까, 아니 두 달일지도 모른다. 창틀을, 책등을, 오래 열지 않은 서랍 손잡이를 손끝에 묻은 회색 가루가 이상하게 부드럽다. 언제부터 쌓였을까. 매일 지나쳤는데 보이지 않았던 것들.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오후가 되어서야, 공기 속을 떠다니는 입자들이 보였다. 아, 이렇게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구나. 당신도 그랬을까. 누군가 떠난 자리가 선명해지는데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처음엔 그저 멍했을 테고, 한참 뒤에야 그 사람이 웃을 때 눈꼬리가 어떻게 접혔는지 문득 떠올랐을 것이다. 상실은 한 번에 오지 않는다. 먼지처럼, 아주 천천히, 겹겹이. 아프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또렷해지는 것들. 그걸 닦아내는 일은 슬프지만, 그 아래 당신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득 햇빛 같은 순간이 오면, 안에 쌓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사람이 말했던 문장 하나, 함께 걸었던 길모퉁이 하나. 지나간 시간이 오히려 또렷하게 만드는 것들. 먼지를 닦아낼 수는 있어도 그 먼지가 앉았던 시간까지 지울 수 없는 것들을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시절 인연’. 살면서 공감 안 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그런데 보통 말이야. 믿음은 관계를 지탱하는 토대라지만, 믿음을 상황을 모면하는 처세로 사용하는 일들 말이야. 자신의 믿음은 애정에 가깝고, 타인의 믿음은 불인정에 가까운 일들 말이야. 인간관계의 실패가 단순, 사회성의 문제가 아닌 인격의 비대함이 만들어낸 결함의 비극을, 허울 좋은 말들로 위로하는 일들 말이야.
좋은 문장을 찾다가 시간만 흘렀어. 그렇게 전하고 싶은 말을 손바닥에 꼭 쥐고 있으니 땀에 젖어 무거워지더라고. 한땐 네게 닿을 말을 고르느라 밤새 단어들을 펼쳐놓았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쁜 말을 주울수록 정작 하고 싶던 말은 멀어지더라고. 마치 선물을 포장지로만 계속 감싸는 것 같았어.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를 만큼 겹겹이. 이건 너무 가볍고, 저건 너무 무겁고. 그러다 문득 떠올랐어. 내가 말을 다듬는 동안 정작 네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는 걸. 필요한 건 정돈된 문장 보다, 내 안에서 너를 향해 뛰는 심장 소리였다는 것을. 아무리 예쁜 말도 닫힌 가슴 뒤에 가두면 소용없더라고. 서랍 속 편지처럼, 쓰고도 보내지 못한 것들처럼. 문장 뒤에 숨어 있던 어눌한 나를 꺼내놓으니, 그제야 말이 걷기 시작했어. 말이 누군가를 향해 걷기 시작할 때, 문장은 발밑에서 피어나. 손에 쥔 말이 땀에 젖는다면, 이제는 놓아줄 때야. 말은 내 안에 갇혀 있을 때보다 서툴게라도 밖으로 나올 때 진짜가 되니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도 괜찮아. 네 목소리로 열린 문 사이로 나아가는 바람이, 누군가의 귓가에 닿는 순간을 믿으니까.
내기하자 어때? 네가 걱정한 불안과 내가 기대한 행복을 말이야. 가끔은 말이야.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할 일들 속에 있다면 말이야. 누군가가 던진 내기에 한번 휩쓸려 보는 건 어때. 그쪽이 퍽 괜찮아 보인다면 한 번쯤은 의심스럽더라도 기회에 닿아보는 건. 네가 걱정한 모든 일들을 내가 대신 가져갈게. 그러니까 너는 그냥, 오늘 저녁 하늘이 분홍빛인지 아닌지만 봐줘. 밤새 뒤척인 고민 하나를 가져가는 대신, 너는 오늘 버스 창밖 풍경 한 번만 제대로 봐줘. 그거면 돼.
헝클어진 하루 그리고 일주일, 도저히 감도 안 오는 날들의 뒤엉킨 연속이어도 다가오는 행복을 마다할 필요는 없어. 있는 그대로 들어오는 행복을 마주해도 괜찮아.
나의 계절은 말이 없었다. 그 이름을 부르면 무엇이든 깨어날 것 같아서. 그럼에도 너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기처럼 찾아왔다. 너를 앓는다는 건, 어쩌면 너를 놓지 못했다는 못다 한 사랑인지 깊은 흔적인지의 사이에서 흐르는 마르지 못한 개울물 같은 걸지도 모르겠다. 봄이 오면 네가 좋아하던 꽃 이름을 혼자 중얼거리고, 여름엔 네가 싫어하던 습한 공기 속에서도 짜증 섞이던 네 목소리를 찾았다. 가을이면 네가 남긴 문장들이 낙엽처럼 흩어지고, 겨울이면 네 이름이 입김처럼 허공에 흩어졌다. 또, 네가 자주 듣던 노래가 흘러나오는 날이면, 무심코 따라 듣다가 2절이 시작되기 직전, 나는 다음 곡으로 넘겼다. 혼자서는 이 멜로디가 너무 길어서일까. 아니면 이 노래 끝까지 듣고 나면, 내 그리움이 두려움으로 끝나버릴까 봐 무서워서일까. 그러다가 또 생각이 든다. 이 노래는 너와 함께 들어야 끝까지 갈 수 있는 길이었구나. 혼자서는 2절까지 가는 게 이렇게 멀었구나. 마치 우리의 2절이 없는 것과 같은 두려움이었을까. 이 노래는 혼자 부르는 게 아닌 듀엣이었구나. 앞엔 너의 스토리였고, 뒤엔 나였구나. 2절의 지금은 혼자이니까. 그러니까, 남은 2절을 부르면, 목 놓아 부르면, 진짜 마지막 후렴은 우리의 화음으로 부를 수 있을까. 나는 단 한 번도 계절을 타 본 적 없다고 했다. 나의 계절은 이렇게 늘 같았으니까. 때마다 다른 옷을 입고 찾아올 뿐 그때마다 서성이는 그림자는 그렇게라도 곁에 있었으니. 그래. 분명 우리는 둘 다 같은 계절, 어느 오후에 서 있었다. 그렇게 나는 사계절 속 한자리에 너를 남겨두고, 매 계절마다 그곳으로 돌아간다. 너도 그럴까. 계절마다 한 번씩, 어쩌면, 앓을까. 흐릿해진 그림자를 사계 속에 붙잡고, 혼자서는 너무 긴 멜로디에 숨이 멈추고, 보이지도 않는 향기에 걸려 넘어지는 일을.
문장들이 정말 내 손끝에서 나온 게 맞나 싶을 만큼, 밤이면 떠난 빈자리를 더듬었고, 아침의 나는 그 손끝에 묻은 어둠을 씻어냈을 뿐인데 그새 뭐가 달라졌을까. 그저 창밖의 빛이 바뀌었을 뿐인데. 네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도, 남기고 간 온기의 무게도, 밤엔 짊어지려 했고 아침엔 내려놓으려 했던. 마음이 흔들린 게 아니라 빛의 방향이 바뀐 것뿐이라고, 나는 스스로 거짓말 했지. 밤에 쓴 문장이 아침엔 너무 솔직해서 부끄러워지는 것. 어둠 속에선 할 수 있었던 말들이 햇빛 아래선 벌거벗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 밤과 아침 사이, 우린 조금씩 다른 사람이 돼. 너도 그랬을까. 내가 보낸 말들을 다른 시간에 읽으며,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같은 문장이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건, 결국 그 사람이 서 있는 빛의 각도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쉬지 않고 적어내려고. 매번 아침마다 낯설어질 문장들을. 그렇게 조금씩 달라지는 나를 마주하는 일. 언젠가 읽을 그 빛 속에서, 마음이 조금이라도 닿기를. 빛의 간격만큼 그리움도 영글어 있기를.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열 때, 너는 무엇을 먼저 볼 거 같아? 창밖의 검은 아스팔트일까, 아니면 화분에 새로 난 잎사귀일까. 둘 다 거기 있는데 너의 눈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하루의 온도는 달라질 거야. 좋은 것만 보려 애쓰는 게 아니야. 나쁜 것도 분명 있으니까. 다만 좋은 것을 먼저 집어 드는 거지. 식탁 위에 놓인 것들 중에서 따뜻한 국을 먼저 한 입 마시듯이. 순서를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해. 발을 디딜 때 앞꿈치부터 놓느냐 뒤꿈치부터 놓느냐로 걸음걸이가 달라지잖아. 무게 중심이 조금만 앞으로 가도 몸은 자연스레 앞으로 나아가. 넘어지지 않고. 네가 서 있을 수 있는 건 중력을 이기는 힘 보다 중심을 아는 감각처럼. 좋은 것을 먼저 본다는 건 그런 거야. 세상이 기울어도 네 안의 중심만 바로 서 있으면, 넘어져도 괜찮아. 훌훌 털고 금방 일어서는 방법을 알고 있을 테니까.